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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남성의 '그곳' 자르다 병원행…죽음 내몰린 中 성소수자들[김지산의 '군맹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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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성전환 수술까지 제도적 걸림돌 산재…암시장서 정체불명 호르몬제 사고 불법수술 횡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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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무지개인권연대와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의당 대구시당 등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인 31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막고, 고(故) 변희수 하사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3.31/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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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성 후이밍은 20대 초반 여성으로 성전환을 결심했다. 그러나 장애요인이 많았다. 정신질환이 없다는 전문의 진단서와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진단서 받기야 어렵지 않았지만 가족 동의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남아선호 사상이 유난스러운 중국에서, 게다가 장기간 한 자녀 정책으로 집 안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여자가 되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외국에서 수술받을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3만달러(약 3880만원) 비용이 든다는 얘기를 듣고 외국행은 포기했다. 암시장에서 불법 수술을 시도했다. 간신히 의사를 찾아 수술 날짜를 받았는데 수술 전날 의사가 체포됐다.

성 전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의사가 돼 남성기를 자르기로 했다.

"정말 행복하면서도 무서웠다. 출혈이 너무 심했다.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남자인 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게 더 끔찍했다."

2019년 5월 인권단체 국제 엠네스티가 내보낸 기사 중 일부다.

중국에서 성전환이란 엄청난 도전이며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과거에는 성소수자를 의학적 정신병자로 분류했다. 2002년 중국정신의학회가 동성애를 정신 장애에서 제외하면서 진일보 한 듯 보였지만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성전환 수술을 받기 위한 과정에 정신질환이 없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게 그 증거다. '성소수자=정신병자'라는 전제가 깔렸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부모 동의다. 올 4월 건강위원회가 수술 연령 요건을 20세에서 18세로 낮추고 부모 동의를 '통보'로 바꿨다. 성인으로서 의사결정권을 존중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부모에게 통보했다는 '증거'를 요구한다는 건 말장난에 가깝다.

중국 병원들은 여전히 부모 동의를 요구한다. 부모들이 하나뿐인 아들의 남성성을 제거해버렸다며 병원을 상대로 투쟁에 나설까 두려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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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트랜스젠더 1호 김성. 조선족 김성은 중국 국가장학생으로 미국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한 엘리트이며 방송인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사진=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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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동의 내지 통보 증거 같은 독소 조건 때문에 중국 성소수자들은 암시장 같은 음지로 내몰린다. 불법 수술을 받는가 하면 검증되지 않은 호르몬제를 찾아 나선다. 호르몬제를 복약했을 때 비로소 성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호르몬제를 포기할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후이밍의 경우 자가 수술을 결정하기 전 암시장에서 호르몬 약을 구해 복약하던 중 극단적인 기분 변화와 정신 분열 현상을 겪어야 했다. 위조 의약품이었거나 의사로부터 올바른 복약 지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공존한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집에서 스스로 남성성을 제거하는 것이었는데 극심한 출혈로 결국 병원에 실려가야 했다. 가족에게는 사고가 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목숨을 건진 뒤 후이밍씨는 태국 병원으로 향했다.

암시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은 상시적 위험에 노출해 있다. 가격은 터무니 없이 비싸고 가짜약에 속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부작용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이 병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지 못한다.

암흑 세계만 있는 건 아니다. 조선족이며 중국 공인 1호 트랜스젠더 방송인인 김성은 온갖 장벽을 넘어서고 중국에서 성공한 사례다. 1967년생, 랴오닝성 선양 출신 김성은 중국 국가 장학생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가며 미국 뉴욕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무용을 하면서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은 뒤 28살 되던 해 베이징 향산 병원에서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상하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상하이 김성 현대무용단'을 창단해 단장과 총감독을 맡았다. 이후 TV쇼에도 출연, 승승장구하며 트랜스젠더들의 권익 향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중국 혼인정책과 호적정책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며 "나는 여전히 시스템과 싸우고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중국을 향한 말이었지만 사실 세계 모든 나라의 성차별적 요소를 겨냥한 외침이기도 했다.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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