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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서 한국 대통령은 왜 국군포로 얘기도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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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21일 오후 2시쯤 찾은 국군포로 유영복(92)씨의 자택에서 유씨가 무공훈장을 들고 있다. 유씨는 "나보다 용감히 싸운 사람도 많은데 내가 무공훈장을 받게 되어 감사하면서도 송구하다"고 했다.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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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때 단 한 번도 국군포로 문제를 언급하지 않나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3년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북한에 붙잡혀 포로 신분으로 북에서 47년간 강제 노역을 했던 유영복(92)씨는 지난 21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 발표가 있던 2000년 6월 15일을 잊지 못한다. 당시 함경남도 단천시에 있었던 그는 TV로 남북 두 정상이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장면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하면서 ‘드디어 나도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한순간에 시들었다. 김 대통령은 자기 같은 국군포로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씨는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최전방에서 싸우다 붙잡힌 국군포로를 무시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접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유씨는 목숨 걸고 두만강을 넘어 탈북했고, 중국을 거쳐 대한민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 뒤로 정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씨가 귀국한 이후 두 대통령이 더 북한을 방문하고 공동성명 등을 발표했지만 국군포로 문제는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유씨는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는 북한을 두 번이나 가 김정일과 담판을 짓고 일본인 납북 문제를 공식 사과받고 납북 일본인들을 직접 비행기에 태워 데려왔다”며 “국군 병사를 한 명도 못 데려오는 것을 보고 허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유씨는 약간의 기대가 생겼다고 했다. 지난달 10일 유영복씨 등 국군포로 3명이 처음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된 것이 계기였다. 유씨는 “지금껏 남한에 오고 대통령 취임식을 다섯 번째 맞이하는데 처음으로 그 자리에 초청받았다”며 “(현 정부는) 국군포로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15일부터 이틀 간은 국방부 초청 행사로 가족들과 청와대를 관람하기도 했고, 2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6·25 참전용사 행사에도 유씨 등 3명이 초청됐다.

하지만 국군포로 출신 노병(老兵)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온전한 명예회복과 국민의 기억에 남는 것이다. 유씨는 “현충원에 국군포로 추모공원·추모탑을 세우고, 전쟁기념관 등에 국군포로에 대한 내용을 더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휴전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2022년 기준 80명이고, 생존자는 15명이다. 국군포로 지원 단체인 물망초재단에서는 현재 북한에 50~150명의 국군포로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 중이다. 물망초재단에서는 “(국군포로 출신) 어르신들이 북에 억류됐을 때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보니 대부분 기관지가 안 좋고 암 투병 중이거나 치매를 앓고 계신 분도 있다”며 “북에 남은 국군포로들도 90대 고령이라 국가적 차원에서 송환 문제를 조속히 풀어야 한다”고 했다.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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