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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군인 가족부터 찾아 죽였다... 전쟁의 냄새를 아는가" [우크라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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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별 특파원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 ①
부차, 이르핀, 호스토멜, 모슌…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도시들이다. 이 도시들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은 어느새 희미해졌다. '전쟁 참상의 상징'이라는 비극적 꼬리표만 남았다. 전쟁 초기인 2, 3월 키이우를 향해 진격한 러시아군은 이 도시들부터 파괴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작전 개시 명령을 내린 지 120일을 넘긴 24, 25일(현지시간) 도시들을 둘러봤다. 일상의 흔적은 사라지고 전쟁의 아픔이 선명했다.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은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전쟁의 공포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공습 경보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지만, 도시는 전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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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호스토멜 옆 도로에 소실된 차량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호스토멜=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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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가락처럼 휜 철근들… "여긴 '전쟁 냄새' 나는 곳"


이 도시 네 곳은 수도 키이우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형성된 배후 도시다. 신혼부부들이 많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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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키이우(흰색) 북서쪽으로 외곽도시들이 형성돼 있다. 하트로 표시된 도시는 맨 위쪽부터 모슌, 호스토멜, 부차, 이르핀. 구글맵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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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엔 저마다 달랐을 도시들이 서로 닮아 있었다. '파괴'의 이미지가 각 도시를 관통했다. 건물들은 외벽이 무너져 내부를 훤히 드러냈다. 그나마 무너지지 않은 건물 벽면은 포격 자국이 뒤덮었다. 한때 건물을 지탱하고 있었을 철근은 제멋대로 휘어져 언제라도 행인들을 찌를 듯했다. 아스팔트 바닥은 포격으로 움푹 파였고, 끊어진 전선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 채 바람에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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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부차의 유명 쇼핑센터가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다. 부차=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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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한 일상'은 자취를 감추었다. 부차의 유명한 쇼핑센터 주변엔 폴리스 라인이 처져 있었고, 이르핀에서 가장 큰 피트니스센터는 형체만 남기고 붕괴됐다. 부차 쇼핑센터 앞에선 뭔가가 고약하게 타는 냄새가 났다. 그 앞에서 만난 한 우크라이나인은 이를 "전쟁 냄새"라고 표현했다.

부차 거주 재향 군인 "날 죽이려던 러시아… 못 잊어"


키이우 중심으로부터 북서쪽으로 30㎞ 떨어진 부차엔 가장 비참한 수식어가 붙었다. 러시아군이 집단학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시체 수백 구가 발견됐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사는 부차를 '대량학살의 도시'로 기억할 것이다.

집단학살이 알려진 지 4개월가량 지났지만, 부차 시민들은 여전히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한 노인은 "너무 무서운 날이었기 때문에 증언조차 하고 싶지 않다"며 기자를 피했다.

부차 시민들은 끝까지 항거했다. 재향 군인 A씨는 "러시아가 전쟁을 개시하자마자 시청에 가서 무기를 받아왔다. 숨어서 러시아군의 동향을 파악한 뒤 우크라이나군에 전달했다"며 자신의 활약상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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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슈퍼마켓 앞에서 만난 재향 군인 A씨가 러시아군 점령 당시를 묘사하고 있다. 부차=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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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부차는 결국 점령당했다. A씨는 떠나야 했다. A씨는 "러시아군은 일부러 재향 군인을 찾아다녔다"며 "도시에 더 머무르면 죽게 될 게 분명했다"고 했다. 그는 노모와 함께 키이우까지 걸었다. "키이우로 가는 도중 부차 길거리 곳곳에서 처참하게 죽어 있는 민간인들을 봤다"고 말하는 그의 입과 손은 수시로 떨렸다.

부차보다 규모가 작은 짜부차 마을에 사는 택시기사 이호르씨도 A씨와 비슷한 증언을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부차처럼 민간인들이 많이 죽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사망자 중 2명이 재향 군인이었다. 그중 한 명은 친한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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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모슌에서 주민들이 지원물품을 살피고 있다. 지원물품은 일주일에 1, 2번 마을에 도착한다고 한다. 모슌=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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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아빠' 둔 아들은 말을 잃었다… "매일매일이 전쟁"


이르핀에서 만난 한 학생은 이르핀을 떠났다가 최근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17세인 그는 자신의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그의 사정을 조금 안다는 이르핀 주민은 이렇게 전했다. "아이의 아빠는 군인이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 가족부터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 여동생과 함께 도시를 떠나야 했다. 아이는 운전할 줄 몰랐지만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이르핀을 떠난 뒤 어떻게 살았냐'고 물었지만 답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잃었다. 그의 아버지가 여전히 전쟁 중이기 때문일 거다."

호스토멜 진입로엔 불에 타 갈색으로 변한 차량 무더기가 있었다. 러시아군 공격을 받아 불에 탄 차량을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일단 공터에 쌓아 둔 것이라고 했다. '차량 무덤'의 안쪽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 자가용 같았다. 총알 또는 굵은 무언가에 의해 뚫린 자국이 있는 차량이 많았다.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을 자행했다는 흔적"이라고 호스토멜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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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보로댠카에서 파괴된 건물 벽면에 이불 등이 매달려 있다. 보로댠카에서는 러시아군 폭격으로 아파트가 두 동강 났다. 보로댠카=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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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토멜에서 만난 비탈리(가명)씨는 "매일매일이 전쟁"이라고 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발밑에 지뢰가 있지는 않을까 자꾸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탈리씨의 집은 러시아군 포격으로 완전히 파괴됐고, 지금 친척들과 좁은 공간에 모여 살고 있다.

모슌에서 만난 알라씨는 "3월 5일 우리 집 옆으로 발사체가 떨어졌다. 곧장 떠나야겠다고 결심했고, 여권만 챙겨 집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거의 매일을 울었다고 한다. 알라씨는 "12세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오히려 나를 응원했다"며 "아들이 '엄마,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라고 했을 때 나는 또 울고 말았다"고 말했다. 모슌 곳곳에서는 우크라이나군과 경찰이 러시아군이 묻고 떠난 지뢰를 찾느라 땅만 보고 다녔다.



모슌∙보로댠카∙부차∙이르핀∙호스토멜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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