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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로 후퇴한 미국 여성들의 삶… "800km 원정수술해야 할 수도"[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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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대법원이 24일(현지시간)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보호해 온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해 임신중단과 관련한 미국 여성들의 삶은 1970년대로 후퇴하게 됐다. 원정시술과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단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 노동시장과 경제 상황에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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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로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지 이틀만인 6월 26일(현지시간) 임신중단을 요구하는 운동가들이 워싱턴 DC에서 임신중단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외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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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위해 최장 867㎞ 이동해야 할수도




뉴욕타임스(NYT)는 25일 대법원의 판결 이후 임신중단 수술을 진행했던 병원들이 기소를 우려해 예정된 수술을 취소하고 있으며, 일부 여성들은 서둘러 원정시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아칸소주에 위치한 한 병원은 24일 17건의 임신중단 수술이 예정돼 있었지만 단 1건도 진행되지 않았다. 아칸소주는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자동으로 임신중단을 불법화하는 ‘트리거(방아쇠)’ 조항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옐로해머기금의 로리 버트램 로버츠 전무이사는 “혼란과 함께 전화 문의가 폭발하고 있다”며 “임신중단을 위해 다른 주를 방문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신중단을 예정하고 있던 미국 여성들이 임신중단 시술이 금지된 주에서 다른 주로 이동하는 현상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NYT는 이달 초 미국의 거의 모든 여성이 임신중단 클리닉과 차로 몇 시간 이내 거리에 살았지만 조만간 각 주의 관련 법제화 작업이 완료될 때쯤 가임기 미국인 여성의 4분의 1이 합법 임신중단 시술을 받기 위해 322㎞ 이상을 여행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신중단권을 옹호하는 연구기관인 구트마허연구소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가 무효화할 경우 여성들이 임신중단 시술이 허용된 주를 찾아 최장 867㎞까지 이동해야 한다고 집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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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저임금 여성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 혜택이 적은 저임금 근로자는 고용주로부터 임신중단을 위한 이동 비용과 현지에서의 경비 등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연구소(EPI)는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임신중단 시술을 할 수 없는 주에 근무하는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들이 즉각적으로 경제적 피해를 볼 것”이라고 밝혔다.


임신중단권 박탈이 가져올 파장들




임신중단 허용 지역으로의 쏠림으로 인해 의료비 상승과 의료서비스 질 저하 등의 부작용이 나올 우려도 제기된다. 환자들이 특정 주로 몰리며 임신중단이 합법화된 주에서도 수술을 받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들버리 대학의 케이틀린 마이어스 교수는 “임신중단 금지주로 둘러싸인 콜로라도, 캔자스, 일리노이와 같은 주는 환자들의 주요 목적지가 될 수 있다”며 “우리는 엄청난 수의 여성들이 이 주에 유입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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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전문가들은 임신중단권 후퇴로 미국 여성들의 의료기관 방문 기회와 검진 빈도가 줄어들며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단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면서 임신중단에 사용되는 약물 규제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000년 ‘RU 486’으로 알려진 알약으로 임신 유지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차단하는 미페프리스톤을 승인했다. 하지만 일부 주에서는 이번 판결 이전에도 이 알약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왔다. 대법원의 판결과 함께 주정부들이 해당 약물 금지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일부 주정부의 미페프리스톤 구매 금지 강화를 막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여성들의 임신중단권 박탈로 미국의 고용시장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오기 3년 전인 1970년 미국 여성의 노동 참여 비율은 37.5%였다. 현재 미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50%에 달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임신중단권 보장으로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났고, 졸업 후에 더 나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며 임신중단권이 박탈되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여성 숫자가 늘어나고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 예산도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3년 입법공백’ 한국엔 영향 없을까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한 것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째 입법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국내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집권당인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낙태법 개정안 입법 세미나가 잇따라 열리면서 임신중단권에 대한 논의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터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국회에서는 국민의힘 서정숙, 최재형, 전주혜 의원이 공동 주최한 낙태법 개정안 입법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 주제는 ‘낙태가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여성의 선택권에 밀린 태아의 생명권’, ‘여성의 왜곡된 인권, 재생산권 다시 생각하기’ 등이었다. 세미나에선 “인류의 모든 구성원은 창조주로부터 생명권을 포함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등의 주장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1일에는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낙태법 개정안 입법 세미나가 있었다. 주최 측은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려는 정부 입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헌재의 판결 취지를 살리되 태아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낙태법 개정안 입법’을 제시하려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미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헌재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결정문에도 인용할 정도로 주요 참고자료로 쓰였다. 그런 판례가 폐기된 점, 임신중단권에 부정적인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관련 논의를 활발히 주도하는 점 때문에 국내에서도 임신중단권 관련 논의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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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7년 만에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린 2019년 4월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를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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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우려는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의 입법 공백’과 맞물려 있다. 헌재는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보완 입법 시한을 2020년 12월31일로 정했지만 후속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낙태 전후로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돌봄이 제공돼야 한다”고 했으나, 이 역시 답보 상태다. 이 때문에 여성들이 인터넷 등에서 낙태 방법을 찾는 등 부정확한 정보들로 신체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침해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해 말 임신중지와 관련한 정보와 약물을 구할 수 있는 국제 비영리단체 ‘위민온웹’ 홈페이지의 국내 접속을 차단하기도 했다.

다만 여성계는 미 연방대법원의 판례 변경이 우려스러운 것은 맞지만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임신중단권에 대한 세계적 논의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온 1973년보다 한참 진전됐다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 운동을 이끌어온 시민단체인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대표는 26일 “미 법원의 판결이 미국 사회나 낙태죄 폐지 운동에 있어서 후퇴인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미국이 세계적 흐름에서 거꾸로 갔다고 봐야 한다”며 “현재 미국의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에 임명된 대법관들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사회가 지향할 것은 미국이 아닌 세계적 흐름”이라며 “보건복지부 등 소관부처를 중심으로 여성의 건강권을 위한 보건의료 체계가 만들어져야 하며 정치권도 임신중단권에 대한 진전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주에서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단은 불법이었다.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강간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며 임신중단 수술을 하려다 거부당한 노마 매코비는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한다. 그는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했는데, 청구인인 그의 가명과 피고인이었던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의 이름을 따 소송 명칭이 ‘로 대 웨이드’라고 불리게 됐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태아가 산모의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 여성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임신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임신 약 28주차가 기준이 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 판결에 따라 임신 6개월 이전까지의 임신중단은 사실상 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han.kr
이유진 기자 yjleee@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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