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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멜다가 돌아왔다"…독재자 부인에서 대통령 엄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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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의 여왕' 시절 황금기로 추억…"영향력 행사하던 때 그리워"

1986년 굴욕 탈출 후 줄소송에도 반성 없이 "잊혀야 할 게 많아"

뉴스1

이멜다 마르코스 여사가 2022년 5월25일 아들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의 당선 현장을 찾았다.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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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마닐라=뉴스1) 강민경 기자,이서영 기자 = 이멜다 마르코스(92)가 독재자의 부인에서 쫓겨난 지 36년 만에 대통령의 어머니로 돌아왔다.

30일 대통령에 취임한 아들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가 남편에 이어 말라카냥궁(필리핀 대통령 관저)으로 들어가는 걸 살아서 보게 된 것이다.

이멜다는 한때 마르코스 독재 정권의 사치와 부패를 상징하던 인물이었지만,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자신이 나고자란 말라카냥궁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여겨진다고 필리핀 매체 ABS-CBN이 전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2019년 제작된 로런 그린필드의 다큐멘터리 '더 킹메이커'에서 "어머니는 내가 본 최고의 정치인"이라고 찬사하기도 했다.

이멜다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영부인 시절을 황금기로 추억했다. 그는 "말라카냥궁 자체가 그립다기보다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영향력을 지녔던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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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멜다 마르코스 여사가 1976년 5월26일 파리 엘리제궁을 방문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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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이멜다는 자신에게 한눈에 반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만난 지 20분 만에 청혼을 받고 11일만에 결혼했다.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마르코스는 11년 뒤인 1965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돼 21년간 장기 집권했다.

이멜다는 남편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자신의 배경이 마르코스에게 전략적으로 도움이 됐다면서 "우리 가족은 남부 출신이고 그는 북부에서 왔기 때문에 좋은 조합이었다. 선거 유세를 하며 노래도 불렀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쿠데타를 걱정하는 마르코스를 대신해 외교 무대에서 특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마오쩌둥 전 중국 주석 같은 지도자들을 작접 만났다.

이멜다는 자신이 만났던 지도자들을 언급하며 "많은 이들이 괴물이라고 불렸는데, 나는 그들이 그렇게 비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관대하고 친절했다"며 "냉전이 한창일 때 내가 실패한 (외교) 임무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세간이 주목한 건 이멜다의 정치적 역할이 아니라 경악스러울 정도의 사치스러운 면모였다.

이멜다는 말라카냥궁에 사는 동안 구두와 보석, 드레스를 무수히 사들였다. '과시하기 위한 사치'를 의미하는 '이멜디픽'(Imeldific)이라는 영어 신조어도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가 1986년 2월25일 항쟁으로 말라카냥궁에서 쫓겨날 당시에도 손주들의 기저귀 가방에 다이아몬드 장신구들을 숨겨 헬기로 탈출하는 기행을 벌여 군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멜다는 "기저귀에 다이아몬드를 넣은 덕에 변호사들에게 지불할 수임료 수백만 달러를 아낄 수 있었다. 당시 시위대가 말라카냥궁을 수색했을 때 그들은 해골이 아닌 아름다운 신발들만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그는 실각 당시 가족들과 함께 해외로 도피한 게 아니라 납치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헬기로 탈출할 때 일로코스의 한 마을인 파오아이에 가려고 했지만, 자신의 의사와 없이 하와이로 갔다고 말했다.

이멜다는 "도피한 게 아니라 납치된 것이다. 20년간 국모로 지내다가 조국을 잃으니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어릴 적 여읜 어머니를 또다시 잃은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36년이 지난 지금도 이멜다는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은 마르코스 일가가 해외에 은닉한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바른정부위원회(PCGG)를 설치해 조사를 실시했다. 2021년 기준 필리핀 정부는 총 1740억페소(4조1220억원)를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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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1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과 그의 부인 이멜다,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학생들의 군사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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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국고를 빼돌려 해외에 투자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멜다는 "나는 혼자였고, 과부였으며, 집이 없는 노숙자였고 고향도 없는 무일푼 신세였다. 차라리 무료 숙식을 할 수 있는 감옥에 보내 달라"며 동정표를 호소했다.

그러나 지난달 이멜다의 집에서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누워있는 여성 VI'로 추정되는 그림이 포착됐다. 마르코스 주니어 측이 배포한 사진에 떡하니 담겨 있었다.

이는 2014년 필리핀 반부패법원이 이멜다로부터 압수한 명화 8점 중 하나로, 진품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다만 PCGG의 위원장을 지냈던 안드레스 바우티스타는 압수했던 작품이 모조품이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필리핀에 돌아온 이멜다는 1995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해 3선까지 했지만 여러 소송에 직면했다. 2018년 일곱 가지 혐의로 각각 징역 6년1개월~11년형을 선고받았고 공직 출마 자격을 잃었지만 필리핀 정부는 아직 그를 체포하지 않고 있다. 형을 살기엔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멜다를 비롯한 마르코스 일가의 행적이 미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선거 유세를 하면서 PCGG의 기능을 외려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걸었지만 환수 작업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이멜다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면서 "잊혀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며 과오를 잊어야 한다는 발언을 해 일부 대중의 반감을 샀다.

ABS-CBN은 마르코스 주니어의 승리가 마르코스 일가에 대한 필리핀 사람들의 '사면'(pardon)는 될 수 있을지언정 '완전한 면죄'는 될 수 없다는 훌리오 티안키 드라살대학 교수의 발언을 실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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