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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규제에 브레이크... 미국 보수 대법원, '광란의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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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청, 탄소 규제 권한 없다"… 탈탄소 정책 위기
바이든 "파괴적 결정"… 유엔 "탄소 감축 목표 지연"
규제 무력화 선례 될까… "법원이 분열 조장" 비판
한국일보

기후 활동가들이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연방정부의 탄소배출 규제 권한에 제동을 건 대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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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성향으로 확연히 기운 미국 연방대법원이 연방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 권한에 제동을 걸었다. 여성의 임신중지(낙태) 권리를 박탈하고, 공공장소에서 총기 휴대를 허용하고, 정치·종교 분리 관행을 무너뜨린 데 이어 기업의 편을 드는 문제성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 중인 탈탄소 정책은 당장 좌초할 위기에 놓였다. 이번 판결을 근거로 다른 분야에 대한 연방정부 권한도 대폭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대법원은 석탄 주산지인 웨스트버지니아 등 공화당 집권 주(州) 19곳이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하는 포괄적 정책이 부당하다’며 환경보호청(EPA)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주정부들의 손을 들어줬다. 의회가 만든 ‘청정대기법’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할 포괄적 권한을 환경보호청에 명확하게 부여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해 현재 정부 정책을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앞선 판결들과 마찬가지로 진보 대법관 3명은 반대했지만, 보수 대법관 6명의 뜻대로 결정됐다. 다수 의견을 집필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석탄 발전을 끝내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제한하는 것은 (기후) 위기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일 수 있다”면서도 “그 정도 규모와 파급력이 있는 결정은 의회가 하거나 의회로부터 명확한 임무를 부여받은 기관이 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 규제 정책의 ‘내용’이 아닌 ‘절차’ 문제를 들어 화력발전 규제를 풀어 준 것이다.

반면 진보 성향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반대의견서에서 “법원은 의회나 전문기관을 대신해 스스로 기후 정책 결정권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은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미국에서 석탄 발전은 전체 전력의 20%를 담당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30%는 발전소에서 나온다. 백악관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나라를 퇴행시키려는 파괴적인 결정”이라고 지적하며 “바이든 대통령은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법에 따라 부여된 권한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 공통 과제인 데다 미국이 세계 2위 탄소 배출국이라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국제사회에도 충격을 던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미국 같은 주요 탄소배출국의 결정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은 금세기 말까지 ‘지구온도 상승폭 섭씨 1.5도 이내 억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리처드 시거 미국 컬럼비아대 기후과학 연구원은 “기후위기에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며 “과학이 무시됐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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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의 주의사당 앞에서 임신중지권 지지자들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권 폐기 판결에 항의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잭슨=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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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이 선례가 돼 향후 다른 연방정부 정책들까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 해석을 그대로 적용하면, 다른 정부 기관들이 시행 중인 각종 규제들에 대해서도 법에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법률가들은 “보수 대법관들이 기업 이익에 방해가 되는 정부 규제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공격 무기를 기업들에 쥐여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레아 리트먼 미시간대 법학 교수는 “이번 결정은 새로운 사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법적 권한을 행사하려는 정부기관을 때려잡는 교리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보수 절대 우위 구도로 재편된 대법원은 여름 휴정기를 앞두고 최근 열흘 사이 작심한 듯 시대에 역행하는 판결을 쏟아냈다. 미국 전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도 지난달 23일 일반인이 야외에서 총기를 휴대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제한한 뉴욕주 주법을 뒤엎었다. 같은 달 21일에는 주정부가 종교색을 띤 학교를 수업료 지원 프로그램에서 배제하는 것은 위헌이라 판단했고, 27일에는 고등학교 스포츠 경기 뒤에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행위가 종교의 자유에 속한다고 판결해 기존 정교분리 관행도 후퇴시켰다. 24일에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로 대(對)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폐기해 미국 사회를 극심한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뉴욕타임스는 “대법원은 환경보호청 권한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회기 마지막 날까지 정치적 분열을 조장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대법원은 단 2주 만에 여성 보건의 자유를 없애고, 공공장소에 치명적인 무기들이 넘쳐나게 했으며, 이제는 지구를 불태우는 조치까지 취했다”고 맹비난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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