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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했던 한국 학창시절이 자양분... 수학, 동료와 함께하는 게 효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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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기자회견]
"시인 꿈꿨지만 과학 기자로 진로 변경"
"살면서 만났던 수많은 롤 모델들 덕분"
한국일보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허준이 교수 2022 필즈상 수상기념 기자브리핑에 핀란드에서 화상으로 참석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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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수학연맹(IMU) 회장에게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가 밤이었어요. 혹시 필즈상을 말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맞다 하더라고요.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울까 말까 10분을 고민하다 깨웠더니, 아내가 ‘응. 그럴 줄 알았어’ 하곤 바로 다시 잠을 자더군요.(웃음)”

'허준이'라는 이름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그의 필즈상(Fields Medal) 수상은 갑자기 들려온 낭보였지만, 그를 아는 이들에게는 꽤나 당연한 소식이었다. 허준이(39) 한국 고등과학원 교수(미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의 업적을 알고 있는 이들은 그가 이번에 ‘수학계의 노벨상’을 따내리라는 것에 큰 의심이 없었다.

40세가 되기도 전에 수학계의 각종 난제들을 풀어내며 수학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상을 수상한 한국계 수학자 허 교수는 모국 언론과 소통하기 위해 6일 화상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계 수학자 대회가 열리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인터뷰에 응한 허 교수는 "수학의 매력은 동료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그 과정에 있다"며 "수학은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어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헬싱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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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허 교수가 한국 기자들과 주고받은 일문일답.

-수상 소식 언제 전달받았나.

"소식은 올해 초에 들었다. 러시아에서 시상식이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가족 모두가 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대회 장소가 헬싱키로 변경됐다. 올여름에는 한국 고등과학원에서 지낼 예정이다."

-수상하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수학적 연구가 있다면.

"어느 하나를 뽑기 어렵다. 대부분 공동연구였고, 같이 일한 연구자들은 연구마다 달랐다. 돌이켜보면 추억 속 앨범 같다.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소통이 새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고 정답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소중한 추억이다."

-한국에서 대학원까지 마쳤는데, 한국 교육에서 만족스러운 점은.

"사실 저는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 비교 대상이 마땅치 않다. 따뜻하고 만족스러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초중고 때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친구들 한 40~50명이서 한 반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좋은 면도 있고 싫을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만 할 수 있던 경험이다. 지금의 저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된 수많은 경험을 제공한 소중한 시기다."

-제2의 허준이가 나오기 위해서 수학계는 어떻게 변해야 하나.

"너무 많은 젊은 수학자분들 잘해주고 있다. 사실 저는 그중에 하나일 뿐이다. 저 같은 사람이 또 나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긴 껄끄럽다. 젊은 수학자들이 부담을 느껴서 단기 목표를 추가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 편히 즐거움을 쫓으면서 장기적으로 큰 프로젝트를 할 만한, 안정감 있는 연구 환경이 제공됐으면 좋겠다."

-수학의 매력은 무엇인가.

"현대 수학에는 공동연구가 활발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혼자 하는 것보다 동료들과 함께 생각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경험이 수학 연구자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사람 하나하나를 생각의 그릇이라고 할 때, 물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 중간에 물을 흘리면서 줄어들 법도 한데, 주고받을 때마다 2, 3배씩 불어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그동안 몰랐던 난해한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굉장히 큰 만족감이고,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십몇 년 전에 빠진 이후에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상에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사실 특별한 취미는 없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수학 연구만 하기에는 제가 지구력이 떨어진다. 원래 공부를 그렇게 오래 하지는 못하는 스타일이다. 연구 활동은 4시간 정도 하려고 노력한다. 그 외에는 가족들과 보낸다. 첫째는 일곱 살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쳤고, 둘째는 이제 두 살이 되어간다. 아이들 돌보고 청소도 하며 머리를 식히고, 다음날에는 또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한다. 그렇게 매일 똑같은 일상이다."

-물리학과에 진학한 이유는.

"어릴 적 가장 열정이 있던 것은 글쓰기였다. 그중 제일 좋아하는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씩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떤 걸로 먹고살 수 있는가, 타고난 재능으로는 어림없는 것 같아서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만족할 만한 분야를 찾아봤다. 제가 다른 글 쓰는 분들에 비해 과학에 흥미가 있어 '과학 저널리스트'를 하면서 살 수 있겠다 싶어서 물리천문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그러다가 대학교 3, 4학년 때 진로 고민을 심각하게 하면서 잠시 학업을 쉬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순수 수학' 강의를 들었고 수학의 매력을 알게 됐다. 이후 수학에 빠진 상태에서 지난 십수년을 살았다."

-해결한 난제들을 쉽게 설명해 달라.

"수학은 역사적으로 여러 줄기가 있고, 하나하나 줄기가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크게 나누면 공간을 다루는 기하학, 변화를 다루는 해석학 그리고 이산 수학이 있다. 이 세 가지에 필요한 인간의 직관이 다르고, 여러 이유로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이 세 가지 다른 분야를 충분히 깊게 연구하면 동일한 패턴이 관찰된다. 이런 패턴을 하나씩 찾아내고 왜 이런 종류의 패턴이 나타나는지 밝혀내는 데 약간이나마 공헌을 한 것이 제 연구의 대부분이다."

-롤 모델이 있나.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수학 문제 풀면서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아니면 살아오면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생님, 친구들을 너무 반복해서 잘 만났다. 십수년 동안 누구 한 명의 롤 모델을 따라갔다기보다 여러 명이 있다. 제가 영웅으로 생각하는 선생님, 친구들을 적고 배우고 싶은 점을 적은 작은 수첩이 있다. 그분들이 저한테는 다 롤 모델이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배우고 싶은 점을 따라해보기도 하고, 비슷한 생각을 말해보기도 하며 살고 있다. 한 명을 뽑는 건 공평하지 않을 것 같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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