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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프락치였다"‥끈질긴 '녹화공작'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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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1980년대 초반 김순호 국장처럼 보안사의 녹화사업 대상이 돼서 실제 밀정활동을 했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녹화공작은 군 복무 시절뿐만 아니라 제대 후 복학한 뒤에도 활동비까지 쥐여주며 자신들을 공작에 활용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손령 기자입니다.

◀ 리포트 ▶

고려대 4학년이던 1983년, 학생운동을 하다 군에 강제 징집된 양창욱 씨,

3년 전 양씨는, 과거 자신과 함께 보안사 녹화공작 대상이 됐다 의문사한 친구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국방부에 자신의 보안사 문건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자료에는 김순호 국장처럼 밀정 활동을 하며 보안사에 보고했던 대학 써클의 동향 등의 내용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양창욱/녹화공작 대상자(고려대 80학번)]
"충격을 받았어요. 이렇게 자세하게 내가 썼구나. 결국은 내가 쓴 것들이거든요. 그걸 누가 위장하거나 조작할 수 없습니다."

1982년 강제 징집돼 녹화 공작을 당한 서울대 80학번 권혁영 씨.

권씨 역시 군복무 시절 밀정으로 학내 동향을 보안사에 보고했는데, 이런 활동은 군에서 제대한 뒤에도 계속됐다고 털어놨습니다.

권 씨의 보안사 문건을 확인해보니, 전역을 엿새 앞둔 4월 15일 순화활용 계획 보고서가 작성됩니다.

여기에는 "전역 후 서울공대 연극반에 재침투시켜 불순의식 소지자 파악에 지속 활용한다. 존안자료 일체를 주거지 보안부대에 이첩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게다가 보안사가 활동비를 지급했다는 내용도 포함돼있습니다.

이같은 보안사의 공작은 보안사의 여러 문건에서도 확인됩니다.

1982년 대공활동 지침 문건을 보면, "종교, 학원, 노조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침투 공작을 전개하며, "보안 유지상 '녹화 공작'으로 호칭한다"고 기록돼있습니다.

이 녹화 공작을 다룬 또 다른 문서에선, 군 전역자를 활용하겠다는 보고가 담겨있는데, 예비군과 방위병, 군 자녀 등을 활용하고, 15곳의 노조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김순호 국장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탄압해본 적 없다'고 주장했지만, 같은 처지였던 녹화공작 대상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양창욱/고려대 80학번]
"언더(지하 조직) 쪽에 있는 내용들은 건드리지를 않고, 자기가 지켜야 할 양심 최저선이라는 것은 있는 거죠. 노동 현장도 김순호는 철저하게 (밀정 활동의) 자발적 의지가 강했던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MBC뉴스 손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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