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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 것뿐인데...무서워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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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르포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 베트남 유학생 짠반캄씨

한국에서 이주자는 살아 숨 쉬는 자인가. 존 버거는 <제7의 인간>에서 이들을 가리켜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라 했다. 오직 노동하는 몸으로 기능하기를 요구받고, 표류함이 당연시 여겨지고, 존재할 권리를 국가의 허락에 구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현주소이다. 체류권을 '허가'받은 이주민들조차 한국 사회의 성원권을 제대로 획득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국가는 잔혹하고, 사회는 무심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계속되는 일. 한국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이주민들의 삶을 르포르타주로 담고자 한다. <편집자말>

경기도 소재 제조업 공장에 불법 취업한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 유학생 46명이 법무부 수원출입국·외국인청에 적발되었다는 뉴스를 본다. 이런 뉴스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저 학생들 중에 우리 학교 학생들도 있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자연스레 짠반캄(24)씨가 떠오른다. 그는 2021년 3월부터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중인 베트남 유학생이다.

짠반캄씨는 2021년 12월 강릉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 법무부 춘천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불법취업 단속에 적발되었다. 일자리를 노린 누군가가 불법 취업 사실을 알고 일부러 단속반원들에게 신고를 한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시 짠반캄씨는 몹시 무서웠다. 한국어를 잘하지는 못해도 그게 욕설인지는 본능적으로 다 안다. 단속반원들은 욕설을 했고 무차별적으로 수갑을 들이댔다. 너무나 두려웠다. 그대로 한국에서 쫓겨나는 건 아닌지 막막했다. 제발 한국에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출입국관리소에 있는 동안 그는 학교와 다른 베트남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렇지만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기다림의 피곤한 하루를 보낸 후 학교 선생님이 와서 저를 구출해요.'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그나마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와 동료들은 나오자마자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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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짠반캄씨 ⓒ 짠반캄



그날 짠반캄씨와 함께 적발된 인원은 전부 10명. 뜻밖에도 짠반캄씨의 학교 출석률과 성적은 비교적 양호했다. 학교에서도 팔짱 끼고 불구경 할 수만은 없었다. '존경하는 심의관님께'로 시작하는, 심의관에게 짠반캄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학업을 이어갈 의지가 강해 강제 출국을 피할 수 있도록 부탁한 것이다. 또한 다시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교에서도 유학생 관리를 철저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학교는 현재 인증대학을 유지하고 있다. 유학생 관리가 특히 우수하다고 지정한 우수 인증대학이었는데 2021년 한 단계 아래인 인증대학으로 지정받았다. 그래서였을까. 짠반캄씨는 범칙금을 납부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이처럼 체포된 사람들 모두가 운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그중 절반만 한국에 남게 되었다. 5명은 베트남으로 추방되었고, 한국에서의 꿈도 거기서 끝이 났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만 고스란히 남았다.

추락한 후에도 단속은 계속된다

불법 취업한 외국인 유학생을 적발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염려되는 건 물론이고 미얀마 출신의 노동자 딴저테이(26세)씨의 안타까운 죽음 때문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유학생들이 토끼몰이식 단속에서 사고를 당하지 않을 확률은 너무도 낮다.

2018년 8월 22일 경기도 김포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그는 점심 식사를 하러 컨테이너를 찾았고 출입국단속반이 들이닥쳤다. 미등록상태였던 그는 창문을 통해 달아나려다가 8m 아래 공사 현장으로 추락했다. 딴저테이씨는 뇌사에 빠졌고 한국에 입국해 아들을 돌보던 그의 아버지는 결국 장기 기증을 선택했다.

미얀마 공동체와 여러 단체들이 모여 딴저테이씨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살인 단속 규탄 및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씨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들은 또한 책임자 처벌과 함께 단속 추방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 컨테이너 식당에는 창문이 3개가 있었고, 창문 바로 앞에는 지하 8m의 공사 현장이 있었다. 누가 봐도 예측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단속 앞에 창문을 통해 도주하리란 걸. 그런데도 단속반은 우발적 사고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직권 결정문을 보면 단속을 시작한 지 3분 만에 딴저테이씨가 추락했고 단속반원 전체에 그 사실을 공유했으나 119에 신고만 했을 뿐 구호를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더 경악할 일은 추락한 후에도 단속은 지속되었고 총 33명의 불법 체류자를 단속했다는 사실이다. 생명은 완전히 무시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명사고 위험 예상 시 단속을 중지하는 등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그러한 권고를 검토하기로 했지만 범법자 대부분이 도주하는데 단속을 중지하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출입국사범 단속 과정의 적법절차 및 인권보호 준칙 제 5조를 살펴보면, 단속 시작 전에 미리 관련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여 단속계획서를 작성하고, 특히 사전에 현장을 답사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절차만 지켰더라면 생때같은 청년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법체류자란 낙인

2021년 당시 우리 학교는 코로나 사태로 전면 온라인 수업을 해야만 했다. 학교에 등교하지 않아도 되니 짠반캄씨를 포함한 대다수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수준의 시간제 취업 허용 조건을 벗어나는 취업을 하게 됐다. 짠반캄씨만 단속에 걸렸으니 운이 없다고 해야 하나. 범칙금을 납부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고 추방당하지 않았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짠반캄씨의 경우 석사 과정 유학생이므로 D-2 비자에 해당한다. D-2 비자 규정을 살펴보면 원칙적으로 아르바이트는 금지고, 사전에 허가받은 경우 아르바이트 수준의 시간제 취업이 허용된다(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가운데 시간제 취업 허가를 받고자 서류를 제출한 학생은 여태까지 단 한 명뿐이다).

토픽 4급이나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4단계 이수를 하지 않은 경우 아르바이트 허용 시간은 절반이나 줄어 주중 15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 경우도 신청일 기준 직전 학기 평균 성적이 C 학점 이상이어야 한다. 허가받지 않고 취업했거나 허가받았더라도 아르바이트 시간을 초과하면 모두 불법 취업에 해당한다.

불법취업에 해당하면 당사자 및 고용주를 출입국관리법 제18조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1차 적발 시 위반 정도가 경미하다면 통고 처분 후 체류 허가로 결정한 경우 범칙금을 납부해야 하며 그날로부터 1년간 시간제 취업 허가 제한을 받게 된다. 2차 적발부터는 예외 없이 강제 퇴거를 원칙으로 한다. 방법이 없다.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이때부터 '불법 체류자' 낙인이 찍힌다.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데도 말이다.

두 배로 일해야 산다

짠반캄씨는 범칙금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두 푼이 아니고 몇백만 원이란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범칙금으로 무려 200만 원을 납부했다. 한 달 급여가 고스란히 들어간 셈이다. 그의 일당은 12~13만 원. 여자들이 7~9만 원을 받는 거에 비하면 그래도 많은 편이다.

범칙금을 납부한 날로부터 1년간은 시간제 취업 허가 제한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일을 안 하고 놀 수는 없다. 당장 생활비에, 베트남 가족들에게 송금해야 할 돈에, 친구 집에 신세 지고 있으니 얼마라도 월세를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다음 학기 등록금이 기다리고 있다. 이 중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유학 비용 때문에 진 빚이다. 한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그의 가족은 은행에서 거의 1만 1000달러를 빌려야 했다. 당시 우리 돈으로 1300만 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한 학기 등록금과 기숙사비와 알선해 준 유학원 수수료를 포함한 금액이다. 짠반캄씨는 빚을 갚기 위해 고향에 한 달에 100만 원씩 송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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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짠반캄씨가 일하고 있는 경기도 하남의 사과나무 농장 ⓒ 김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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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칙금을 메우기 위해 짠반캄씨는 종일 농장에서 일을 한 후 밤 아홉 시부터 베트남 식당에 가서 두 시간을 더 일한다. 설거지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주방 보조를 한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의 취미는 축구와 요리인데 친구들이 없으니 축구는 할 수가 없고 요즘은 걷기만 한단다.

집에 돌아오면 자정. 도대체 잠은 얼마나 자냐고 물었더니 다섯 시간밖에 못 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인지 많이 야위었다. 점심은 농장에서 마련해주는데 먹을 만하다고 한다. 농장주의 부인이 베트남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더 편안하다고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행 결심

짠반캄씨의 고향은 베트남 꽝빈성이다. 꽝빈성은 베트남 중부에 있다. 성도는 동허이이며 동쪽 바다에 접하고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500km, 다낭과 300km, 후에와 180km 떨어져 있다. 꽝빈성은 베트남에서 가장 폭이 좁은 지역으로 라오스 국경에서 동쪽 바다까지 동서 50km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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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꽝빈성(빨간색 표시) ⓒ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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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할머님과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 할머님 연세는 79세, 부모님은 47세로 동갑이다. 짠반캄씨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어머니는 가축을 기른다고 해서 돼지나 닭이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소라고 대답한다. 가난한 삶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다.

짠반캄씨는 2020년 베트남 응에안 성 빈시티에 소재한 빈기술사범대학교 자동차 기술학과를 졸업한 후 잠시 부모님을 돕다가 이듬해인 2021년 3월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베트남에 있었으면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한국에서 노동을 하는 게 괜찮냐고 물었더니 상관없다는 답변이 왔다. 한국에서 한 달만 일해도 베트남에서의 1년치 월급을 벌 수 있다고 한다. 일당이 한 달 급여와 맞먹는 셈이다. 공부를 하면서 일도 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을 선택했다고 한다.

한국에 왔을 때 짠반캄씨는 빚을 갚기 위해 일자리부터 구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에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적합한 직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번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지원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지만 언어 장벽은 높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인보다 적은 급여를 받았다. 과연 한국은 짠반캄씨가 꿈꾸던 나라인가? 그의 삶은 그의 바람대로 더 나아졌을까?

지금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으니 베트남 꽝빈성에 있는 가족을 볼 수 없는 거라고 한다. 처음 카카오톡 메시지로 연락을 했을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던 짠반캄씨. 2021년 12월 법무부 춘천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불법 취업 단속에 적발되었던 이력 때문에 더욱 경계하는 듯했다. 학교 교직원인 내 신분을 말해도 무슨 문제가 생겼냐고 여러 번 물었다. 노출되는 걸 몹시 꺼리는 눈치였다. 순간 인터뷰가 쉽지 않겠구나, 직감했다.

우여곡절 끝에 날짜를 잡았다. 무언가 절반쯤 해결된 느낌을 받았다. 만나기로 한 날인 6월 5일 아침 짠반캄씨로부터 전화가 왔을 땐 몹시 불안했다. 약속을 취소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다(이런 섬세함이라니!). 본인은 고기만 굽고 동행한 여자 친구에게 상추쌈을 싸서 건넨다. 고기라도 실컷 먹이고 싶었는데 긴장해서인지 잘 먹지 않았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 불편하면 가명을 써도 좋다고 했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본명을 쓰고 싶다는 거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곧 소나기가 내릴 듯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자 카운터에 가서 무릎 담요를 가져왔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묻자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 것뿐이라고 한다. 내년 3월 30일이면 비자가 만료된다. 그 후 짠반캄씨가 한국에 머물 수 있는 확률은 현재 비관적이다. 구직 비자인 D-10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불법 취업 단속에 걸려 벌금을 낸 기록이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짠반캄씨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이번 방학에 병원비를 마련해서 베트남에 잠시 다녀와야 한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머리를 가리킨다. 통역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짠반캄씨 얼굴에 그늘이 잔뜩 드리워진다. 하지만 금세 환하게 웃는다. 한국어를 가르쳤던 여성 결혼 이민자 등 베트남 사람들을 오래 봐왔는데 그들은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낙천적이다. 잘 웃는다. 속으로야 울고 있겠지만 자신의 슬픔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추방에 대한 공포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폭염의 나날이 이어졌다. 이제 한국의 8월은 무서운 달이 되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혹서는 혹한 못지않게 위험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 문득 땡볕 아래 일하고 있을 짠반캄씨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 전부터 그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토요일에 일하러 가기 때문에. 토요일에 공부하면 회사에서 우리를 해고하고 일을 못 하게 할 것입니다.'

짠반캄씨는 며칠 간격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일요일 공부하고 싶다. 선생님, 우리 도우세요.'

일을 못 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짧은 한국어와 번역기를 사용한 어색한 문장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에게 지금 베트남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다는 답변이 왔다. 방학을 맞이하면 베트남에 가족을 보러 가겠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니. 나는 한국에 있습니다. 그 시간 때문에 나는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당시 경찰서에 보내졌기 때문에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두려웠다.'

여기서 '그 시간'이란 불법취업 단속에 적발되었던 그 순간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을까 봐 고향 방문을 포기한 것이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실은 한 달 전부터 그는 집요하게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학교에서 자기에게 뭔가를 해주기를 요청했다. 방학 때 고향 방문을 할 경우 딱히 학교에서 해줄 게 없는데도 말이다. 그의 절박함을 모른 체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종이 한 장이라도 받았더라면 그는 안심하고 베트남에 다녀왔을 것 같다.

짠반캄씨는 농장 일을 그만두고 다시 건설 현장에 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쪽 일당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에게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응우옌 칸 히에우(가명)씨 이야기를 해준다. 응우옌 칸 히에우씨는 회사에 취업한 후 취업비자인 E-7을 신청했다. 그런데 비자 심사 과정에서 재학 중 불법취업 사실이 밝혀져 출입국사범 심사를 받게 되었는데 벌금 300만 원을 내고 강제 출국을 당했다.

유학생 불법 취업의 경우 벌금 200만 원 이상은 취업 제한을, 벌금 300만 원 이상은 강제 퇴거 명령을 받게 된다. 짠반캄씨가 건설 현장에 복귀할 경우 다시 법무부 출입국의 불법취업 단속에 적발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 일이 생길 경우 100% 강제퇴거를 당할 게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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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에서 짠반캄씨가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2단계 수업을 듣고 있다. ⓒ 김선향



2022년 8월 21일 일요일. 대학원 석사 과정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2단계 수업 첫날인데 아무리 강의실을 둘러봐도 짠반캄씨가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일요일에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더니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지도 않는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노심초사하는 나에게 몇 시간 후 연락이 왔다. 오늘 공부하는 날이란 걸 몰랐다는 어이없는 답변이다. 물론 죄송하다고 하며 다음 주 일요일부터는 꼭 출석하겠다고 한다. 믿고 기다릴 수밖에. 담당 선생님께도 따로 부탁드렸다.

다음 주 일요일 강의실을 찾아가니 그가 공부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3단계 승급을 하자고 약속했다. 갈 길은 까마득한데 그의 비자 만료일은 이제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 봄에 베트남으로 돌아갈 거냐고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몇몇 베트남 유학생들로부터 이번 추석 연휴 내내 일을 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며느리들 아픈 허리를 우리 학생들 부은 발등을 좀 어루만져다오!

* 필자 소개: 시인. 오랫동안 여성 결혼 이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지금은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김선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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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주민 르포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은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와 <오마이뉴스> 공동 기획으로 2021년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익천문화재단 길동무는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소박한 일들에 힘을 보태기 위해 김판수·염무웅 선생님, 송경동 시인, 민변 조영선 회장,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등의 발의와 참여로 만들어졌습니다. '길동무 청년문학학교', '길동무문학·예술창작기금', '한국사회기층문화보고'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gildongmu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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