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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만 옥천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일들 [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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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성장하고 진화하는 진짜 풀뿌리 언론' <옥천신문> 황민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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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신문> 황민호 대표 ⓒ 박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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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재단은 제19회 전국지역리더대회를 맞이해 <옥천신문> 황민호 대표 등 3인에게 지역리더상을 수여했다. 지난 9월 26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 위치한 <옥천신문>에서 황민호 대표를 만났다.

<옥천신문>은 제법 잘 알려진 '지역 주간신문'이다. 시군의 주간신문 가운데는 사이비 신문도 많지만, 지역의 삶과 밀착해서 성장하고 진화하는 진짜 풀뿌리 언론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옥천신문>은 신문발행에만 머물지 않고, 잡지, 저널리즘스쿨, 공동체라디오 등을 적극적으로 인큐베이팅해서 미디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옥천군에서도 '변방'인 인구 3000명에 지나지 않는 청산면을 중심으로 신문과 라디오 등 새로운 미디어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들이 인구 5만의 옥천군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한 가운데에 황민호 대표가 있다.

황 대표는 지역 언론을 통해 '코민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지역재생에 기여하겠다고 한다. 그를 통해 <옥천신문>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그리고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 <옥천신문>에 들어온 지 올해 만 20년이 된다. 대전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녔는데, 어떻게 <옥천신문>에 입사하게 되었나.
"대전이 고향이다. 1994년 충남대 언론정보학과에 입학했다. 차재영, 이승선, 김재영 등 좋은 교수들 덕에 풀뿌리 언론을 배웠다. 졸업 후 속칭 '언론고시'를 봐서 유명 언론사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고 어느 순간 '현타'가 왔다.

유명언론사들은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저리도 많은데 나까지 숟가락을 얹을 일이 있나? 어디 가든 제대로 기자 역할을 하면 되지. 매체 평판에만 의존하지 말고 기자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자는 호기로운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언론고시 공부를 끝내고 책을 읽었다.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바쿠닌, 푸르동 등 아나키즘 계열의 책, 장호순 교수의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란 책을 읽고 지역과 풀뿌리 언론,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졌다.

2002년 공채로 <옥천신문>에 입사했을 때는 참 좋았다. 정말 학교에서 배운 저널리즘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동료들의 환대와 인정 있는 주민들의 피드백으로 기사를 쓰는 보람과 자부심이 생겼다."

옥천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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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신문> 전경 ⓒ 박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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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사 후 3년 만에 옥천읍에서 자동차로 40분이 넘는 청산면으로 이사를 해서 신문사로 출퇴근했다. 왜 그런 불편을 선택했나. 청산면에서의 생활이 그 후의 활동에 자양분이 되었고 하는데.
"입사 후 3년쯤 반복되는 행사와 취재는 익숙해진 만큼 편해졌고 정체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경우, 대부분 서울이나 광역 언론사로 이동한다. 그런데 왠지 그런 행위가 초심에 이율배반적인 것 같았다. 대신 변화가 필요했다.

2005년 옥천읍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청산면으로 이사했다. 자동차로 40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해야 하는 고생을 감수했다. 면의 삶은 읍과 달랐다. 읍은 갈수록 도시화되었지만, 면은 여전히 공동체가 살아있었다. 아침에 청산초에 가서 아이들과 축구하고, 할아버지들한테 게이트볼도 배웠다. 면 젊은 공무원들하고도 친해져 몇 명은 우리 집에 같이 살았다.

취재는 취재대로 하면서 슬슬 무언가를 시작했다. 청산초 야간도서관 개방을 위해 학교랑 접촉했고 자원봉사자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해 신협, 우체국, 공무원, 학부모 등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야간도서관을 운영했다. 그 사례로 책읽는사회만들기와 <한겨레신문>에서 주는 작은도서관 대상을 받아 1억 원으로 1층 도서관을 리모델링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공부방, 벼룩시장, 금요영화관 등 여러 가지를 주민들과 함께 기획했다."

- 다시 청산면에 들어가게 되면서 느낀 점은?
"인구 3000명 선이 무너졌고 초등학교 전교생이 30명밖에 되지 않았다. 최근 15년 동안 인구감소율이 21%나 돼서 9개 읍면 중에 가장 높았다. 청산은 삶의 여건이 너무 열악해졌다. 그런데 들어와서 살려 해도 살 집이 없었다. 공공인프라는 말할 것도 없다. 읍내 하나뿐인 수영장, 영화관, 체육시설, 로컬푸드 직매장 등을 이용하려면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가야 이용이 가능하다.

청산면에서 잊을 수 없는 분이 계신다. 박약국의 박명식님이다. 박약국은 365일 청산을 밝히는 등불이었다. 버스를 놓친 아이들이 앉아서 언제고 쉴 수 있는 마을의 느티나무였다. 늘 그 자리에서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고 그 실천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2018년 1월 7일 새벽에 운명한 박명식 약사와 약속을 한 것이 있다. 청산을 떠나올 때 곧 다시 돌아오겠다고. 그 약속이 너무 늦어졌다. 지금에서라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 3년간 청산면에서 살다가 다시 옥천읍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옥천신문> 입사 후 10년 차 되던 해에 <옥천신문>을 떠났다. 퇴사 후 3년간 배달 기사를 한 것이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했다.
"옥천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빨간 줄을 치면서 한 줄 한 줄 읽어가고 신문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일주일 내내 붙잡고 기사를 읽는 모습은 큰 감동이었다. 하지만 힘들기도 했다. 매주 돌아오는 마감과 기사에 대한 항의와 시시각각 조여 오는 긴장감은 피를 말리게 했다. 그래서 10년째 되던 해에 신문사를 그만뒀다.

연고도 없는 옥천을 그때 떠날까도 생각했지만, 이상한 자장이 옥천에 붙들어 맸다. '기자' 완장을 떼고, '기사'가 되어 트럭을 몰며 학교급식 배달을 했다. 또한 노인장애인밑반찬 배달과 영양플러스 배달도 해봤다. 기자 10년을 하면서 옥천에 대해 모르는 것 없을 테고 웬만한 것은 다 꿰고 있다는 오만과 자만이 있었다.

그러나 머리 쓰는 일이 아닌 몸을 쓰는 일을 하고, 기자 완장을 떼고 주민으로서 사람들을 만나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옥천에도 못 만나본 사람이 안 가본 곳이 수두룩 빽빽하던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옥천신문>에 돌아가면 더 잘해야겠다고 반성했다. 사실 그들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다. 옥천에 100만 원대 미만 소득자가 34%에 달한다는 통계 수치를 접했을 때 자각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우리는 이들에게 얼마나 마이크를 가져다주었는가 자성했다."

매년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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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 ⓒ 옥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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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다시 <옥천신문>에 들어와 잡지 발행, 저널리즘 스쿨 운영, 라디오 방송 개설 등 참으로 혁신적인 일들을 벌이고 있다. 순차적으로 설명을 부탁한다.
"2017년에 <옥천신문> 문화콘텐츠사업단에서 독립하여 사회적기업인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이 만들어졌다. '고래실'은 가물어도 물이 나는 논을 뜻하는 말로 척박한 지역 문화에 지속적으로 물을 대고 싶어 같이 만든 이름이다.

고래실에서 주민의 삶을 기록하는 <월간 옥이네>를 발행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문화창작공간인 카페 '둠벙'을 운영하고 마을 여행도 기획하고, 아울러 커뮤니티 디자인 사업을 하고 있으며, 각종 공모사업을 기획한다. '고래실'은 현재 13명이 일하고 있다.

2018년에는 로컬푸드 식당 '옥이네 밥상'을 개업했다. <옥천신문> 구내식당으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어엿한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예비적 사업기업으로 지정된 주식회사 '우리동네'는 옥천의 유일한 무가 생활정보지 <오크>를 발행한다.

2019년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기자를 양성하기 위한 '옥천저널리즘스쿨', 2020년 신문이나 잡지보다 더 긴 호흡으로 옥천을 기록하는 '옥천기록공동체', 2021년 '옥천FM공동체라디오', 2022년 복합문화공간 '청산별곡' 등 매년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고 있다.

<옥천신문>을 비롯해 유관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대부분 청년)이 50명에 달한다. 무시 못 할 숫자다. 사람들은 옥천미디어그룹이라고 하는데, 그룹은 아니다. 각 조직은 독자적으로 자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 <옥천신문>은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지향한다. 일반 독자에게는 조금 생소하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보통의 저널리즘과 다르다. 일반 저널리즘이 '창'이라면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거울'이다. 창은 내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이지만, 거울은 스스로를 보는 것이다. 일반 언론은 저명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특별한 사건을 취재하지만,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지역사회에 밀착해서 지역주민 모두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보도하는 공동체 저널리즘이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에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를 실현한다. 언론사의 문턱을 낮추어 사람들이 수시로 다녀가고, 넋두리와 하소연, 그냥 이야기하러 오게 만든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주민들이 <옥천신문>을 구독하는 이유는 효능감이 높기 때문이다. 옥천군 연간 예산이 6000억 원 정도 되는데 그것이 주민을 위해 잘 사용되는지 견제하고 감시한다. <옥천신문>은 사소한 민원에도 귀 기울인다. '초등학교 앞에 인도가 없다', '휠체어가 다니는 길이 중간에 끊어져 있다'.

외롭게 혼자 싸우도록 두지 않는다. 환경미화원 부당해고투쟁, 방문간호사 복직투쟁, 수도검침원 노동자지위소송, 안남 태양광난개발 반대 투쟁 등 굵직한 사건에는 항상 <옥천신문> 보도가 끈질기게 뒤따랐다."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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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저널리즘 스쿨' 홍보물 ⓒ 옥천신문



-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기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옥천저널리즘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옥천 같은 작은 군에서 언론에 종사할 기자를 양성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 청년허브사업으로 2019-2020년에 '별의별 이주기자'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서울시가 숙박비와 식비를 지원해 한해 15~20명 정도 오면서 2년 정도 했는데, 시장이 바뀌면서 지원이 끊어졌다.

옥천은 이를 바탕으로 옥천 풀뿌리 청년학교를 시작했고, 지금은 '옥천저널리즘스쿨'로 부른다. 지역사회를 공부하고 싶은 청년들이 찾아와서 짧게는 2주, 길게는 6개월, 1년까지 머물면서 공부한다. 스쿨이라 해서 특별한 교육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과 함께 지역을 다니면서 동행취재를 하고 익숙해지면 자발적으로 아이템 발굴하고 취재한다. 직접 현장 가서 취재하고 검토해서 바이라인도 본인 이름으로 지면에 실리면 성취감에 스스로 발전한다. 충남대와 동국대(경주갬퍼스)와 인턴십 협약을 맺어 옥천저널리즘스쿨에 다니면 18학점을 이수할 수 있다. 학점 평가는 <옥천신문>에서 진행한다.

처음에는 비용을 신문사에서 다 부담했다. 지금은 숙박비와 식비(점심)만 받는다. 옥천읍과 청산면의 두 캠퍼스와 기숙사를 마련해 1인 1실 제공하고, 월 30만 원을 받는다. 조금 더 오랜 기간 있는 학생들은 청년 일자리 지원정책을 통해 급여를 준다.

옥천저널리즘스쿨 출신들이 절반은 지역에 남고, 절반은 다른 언론사에 간다. <한겨레> <경향신문> <경남도민일보> <프레시안> <연합뉴스> 등에 입사하기도 하고, 지역에는 <옥천신문> <월간 옥이네> 옥천FM공동체라디오 등에 입사하기도 하며 창업을 하기도 한다.

- 지난해에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지고 '옥천FM공동체라디오'를 개국했다. 정부 지원 없이 지역사회 기금으로 설립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인데, 그 과정을 설명해 달라.
"존경하는 언론인 청암 송건호 선생은 군북면 비야리 출신이다. 송건호 선생의 언론개혁운동의 맥을 잇기 위해 옥천 사람들이 2021년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를 창립했다. 기념사업회의 1호 사업으로 '옥천FM공동체라디오'를 개국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FM 주파수 104.9Mhz를 얻었을 때 매우 기뻤다.

그렇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5000만 원이면 될 줄 알았던 리모델링 공사와 장비 구입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1층 기부자의 벽을 만들고 만 원부터 수천만 원까지 액수와 상관없이 똑같이 명판을 걸었다.

무려 1억 3천만 원이 모였다. 조그마한 옥천 지역사회에서 사실 어마어마한 돈이 만들어진 것이다. '옥천FM공동체라디오' 개국에는 <옥천신문> 창간 주역인 오한흥 대표와 민주화운동유공자인 교동식품 김병국 대표가 이사장을 맡아 총대를 맸다."

풀뿌리 미디어가 가장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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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이 만드는 옥천FM공동체라디오 ⓒ 옥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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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FM공동체라디오'가 매일 8시간 방송을 내보낸다고 하는 데 놀라운 일이다. 방송국 직원이 편성국장 포함 네 명이라고 하는 데 이게 가능한가. 라디오에서 주로 어떤 내용을 다루나.
"허가 조건인 하루 6시간 이상 방송 콘텐츠를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왠지 모를 자신이 있었다. <옥천신문>이 일궈놓은 유기농 토양위에서 공동체라디오는 외려 쉬웠는지 모른다. <옥천신문>을 통해 마을방송활동가를 모집했다. 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함께 진행한다.

군서면 금산리에 사는 71세의 김관철 어르신이 있다. 공동체라디오의 '사랑 실은 멜로디'란 코너를 직접 제작하는 디제이자 피디인데 일주일에 한 시간의 프로그램을 엄청난 공을 들여 제작한다.

'옥천에 살어리랏다', '말랑말랑 옥천', '우리 동네 음악수다', '오후의 시 한푼', '우리동네 이야기', '할머니들과 수다수다', '찾아라 맛 도둑', '초대손님', '꿈꾸는 이야기' 등 모든 프로그램을 100여 명의 주민이 하루 8시간 매일 옥천의 전파를 쏘고 있다.

청소년 라디오방송활동가들은 단연 발군이다. 3-4명이 한 팀이 되어서 엔지니어, 진행, 작가, 피디 등 역할을 나눠, '인생초짜 틴에이저', '청라반하다', 'GNJ라디오', '프롬틴' 등 알찬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를 라디오를 통해 처음 듣고 신기해한다. 매끄럽게 잘 진행해서가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에 묘하게 빨려든다."

- 인구 3000명밖에 되지 않는 청산면에 신문과 라디오 등 미디어 공방, 신나는 공방, 먹을거리 공방을 둔 복합문화공간 '청산별곡'을 오픈한다. 어떤 의미가 있나.
"옥천군 8개면 가운데 6개면은 옥천읍 생활권으로 자동차로 20분 안쪽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그런데 청산면과 청성면은 궁촌재와 정방재 두 개의 높은 재가 틀어막고 있어 정서적 거리감은 물론 물리적 거리도 40킬로에 달하는 동떨어진 변방으로 인구감소가 심각하다. 보통 군 단위의 생활 인프라의 대부분은 읍에 구축되기 때문에 청산, 청성에 사는 주민에게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는 풀뿌리 미디어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청산신문>을 별도로 제작하고, 옥천FM공동체라디오와 협력하여 라디오스튜디오, 영상스튜디오도 만들었다. <청산별곡신문>은 8월에 창간호를 내고 매주 금요일마다 이미 7회 발행을 했다.

사단법인 '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를 운영하면서 별도 기자를 확충할 생각이다. 50평 규모의 오래된 철공소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쓰였다. 사회 혁신가를 후원하는 사업인 '카카오임팩트펠로우십'에 선정되면서 매월 소정 금액을 지원받아 이 사업을 용기 있게 시작했다.

복합문화공간인 '청산별곡'은 10월 10일 오전 10시에 개소식을 한다. '청산별곡'은 청산, 청성면 뿐 아니라 5일장 등 하나의 생활권이라 할 수 있는 보은군, 영동군, 상주시 등 인근 4개면(보은군 삼승면, 마로면, 영동군 용산면, 상주시 화동면)의 주민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이다."

농촌 면 단위가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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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 단위 마을 신문 <청산별곡> ⓒ 옥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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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듣기만 해도 놀라운 혁신적 사업을 끊임없이 만들어가고 있는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재정적으로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꾸려왔는지 궁금하다.
"<옥천신문>은 1989년 당시 <한겨레신문> 옥천지국장이었던 오한흥씨가 군민주 방식으로 222명의 창간 주주로부터 자본금 5000만 원을 모아 창간하였다. 초창기의 어려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오 대표의 열정, 같이 일한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옥천신문>이 발전했다.

내가 입사한 2002년에는 월 구독료 1만 원에 2000부를 발행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 지금은 3500부를 발행하고 있다. 매출의 약 51%는 신문 구독료 수입이고 나머지 49%는 광고 수입 등이다. 현재 편집국장을 포함 취재기자 7명, 총무국 4명 등 13명이 있다.

지역에서 오한흥 대표한테 금기를 넘어 제대로 된 기사를 쓰고 풀뿌리 언론을 경영하는 법을 배웠고, 신문사를 그만두고 옥천살림과 농민회 일을 했을 때 주교종 회장에게 지역과 농촌, 농업의 가치에 대해 많이 배웠다. 두 분은 옥천에서 만난 스승이다. 그리고 학교 선배인 사회적기업 고래실 이범석 대표에게 현실적인 회사 운영에 대해 배웠다. 아울러 일선에서 뛰는 우리 기자들 및 직원들한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옥천신문>도 나도 같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 '지역소멸'이 화두다. 옥천군도 지역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소멸'에 대응하여 "사람과 자본, 일자리가 모이는 성장거점을 만들어 지방 도시의 기능을 압축하고, 압축된 도시들을 광역교통망 구축 등을 통해 촘촘하게 연결"하는 '압축과 연결'을 국토균형발전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중핵도시니 메가시티니 하는데, 우리나라 국토의 위계(농촌-중소도시-광역도시-서울)와 지금까지의 지역개발정책을 볼 때, 중심 거점으로 인구가 이동하여 지역의 사막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메가시티는 서울복제품을 양산하고, 농촌을 사막화시킬 것이다. 뿌리를 하대하고 뽑아버리면서 꽃과 열매만 탐하는 욕망이 메가시티의 본질이다.

기본과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농업, 농촌이 중요하다. 우리 삶이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이제는 '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딛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치와 자급', '순환과 공생'이란 가치를 사유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커뮤니티'에 집중해야하고, 농촌 면 단위가 살아야 한다. 농촌은 단지 농산물 생산기지가 아니다. 오랜 농민들이 공동체적 삶을 유지해 온 곳이다. 면 단위에서 자치와 자급이 이뤄지는 행복한 곳이 되어야 이 나라도 살 수 있다.

옥천은 미디어플랜과 푸드플랜으로 그런 지역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과 바람이 있다. 오랜 시민사회의 축적된 힘으로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면 지역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나, 월 15만 원 정도로 거주할 수 있는 사회주택을 건설한다. 둘, 규모에 맞는 공공생활 문화인프라를 조성한다. 셋, 교통인프라(무상교통, 순환버스, 저상버스)를 구축한다. 여기에 농촌에서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농촌주민수당을 지급하면 좋겠다."

박진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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