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지구가 평평하다 믿는 사람들, 바이든이 ‘날리면’이라는 사람들[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4) 지구평평설과 뉴욕발언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구평평설 신봉자들, 정밀한 근거 없이 인터넷에 떠도는 사례 한두 가지 반복 인용…합리적 의심 넘어 종교적 신념에 가까워 보여

평평한 지구를 ‘날리면’ 월성원전은?

몇 해 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분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느 방송사에서 이분들 이야기를 취재하는 와중에 이분들이 과학자들과 직접 토론하고 싶다고 요청해 마련된 자리였다. 3 대 3으로 진행된 토론은 예상대로 평행선을 달리며 끝났다.

그 옛날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월식이 지구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현상임을 간파하고 그때 달에 드리운 지구 그림자의 모습이 둥글다는 사실로부터 지구가 둥글다고 확신했다. 헬레니즘 시대의 에라토스테네스는 같은 위도상의 두 지점에서 관측된 태양의 남중고도 차이를 이용해 지구의 크기를 추정할 수 있었다. 물론 지구가 구형이라는 가정이 전제돼 있었다.

지구 표면에 붙어사는 우리는 지구 전체의 모습이 정확하게 어떤지 직접 확인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인류는 수많은 간접증거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고 결론을 내렸다. 먼 바다에서 들어오는 배는 그 윗모습부터 보인다든지 수평선이나 지평선 너머의 물체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것도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다.

지구평평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아무리 멀리 내다보더라도 수평선이나 지평선이 조금이라도 둥글게 휘어진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 얼마나 정밀하게 그 정도를 측정했는지를 들을 수는 없었다.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 한두 가지 주관적인 사례가 반복해서 인용될 뿐이었다. 기존의 상식과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과학에서 미덕에 속한다. 다만 충분히 그럴 만한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과학자들은 뭔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면 일단 기존의 패러다임 속에서 어떻게든 그 현상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대단히 보수적이다. 이 모든 보수적인 검증작업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현상이 설명되지 않으면 과학자들은 그제야 새로운 이론이나 패러다임에 기댈 수밖에 없다. 혁명은 그렇게 시작된다. 과학이 가장 혁명적인 학문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는 혁명과 보수가 동전의 양면이다.

지구가 평평한지 구형인지 판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지구 전체를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가야 한다. 인간이 직접 지구를 벗어나 지구의 모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961년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처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무려 2500년 가까이 흐른 시점이었다. 아쉽게도 가가린은 “지구는 둥글다”고 명확하게 확인해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지구는 푸르다”는 말을 남겼다. 가가린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둥글지 않았다면 둥근 지구 주변의 중력에 대한 연구를 기초로 해서 쏘아 올린 보스토크 우주선이 가가린을 지구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가가린 이후로 수많은 유·무인 우주선이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촬영했다. 우리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얼마 전 미국에서 쏘아올린 한국 최초의 달 탐사 궤도선인 다누리호가 찍은 지구와 달의 사진이었다. 지구평평설을 믿는 분들은 놀랍게도 그 모든 지구 사진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통제하에 조작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한국은 미국과 가까운 혈맹이니까 이분들은 아마 지금도 한국의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공개한 다누리호의 사진이 미 NASA의 협조 요청에 따라 조작된 이미지로 배포된 거라며 믿지 않을 것이다.

그날 방송사에서 마련한 토론의 장에서 나는 그분들에게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중국이나 러시아 우주선이 찍은 지구 사진은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물었다. 그건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마 여러 번 검토를 한 뒤에라도 그분들의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그분들의 주장은 합리적인 의심과 의견을 넘어 종교적 신념에 가까워보였기 때문이다. 강력한 신념은 그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해 그 신념에 반하는 증거들조차 어떻게든 설명해내는 기발한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만약 그분들을 직접 우주선에 태워 지구 밖으로 보내면 어떨까? 지금은 스페이스X나 블루오리진 등의 회사를 통해 민간 우주여행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설령 스페이스X의 우주선을 타고 지구궤도를 선회하는 여행을 경험하더라도, 이는 NASA의 요청을 받은 스페이스X사가 조그만 스튜디오를 만들어 놀이기구처럼 탑승자를 눈속임한 결과라고 우길 수도 있다. 이분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우주선을 타고 우주공간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 같다.

오류 가능성 내재된 과학, 스스로 고치는 능력 길러…오류 인정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 사회일반에 스며들 때 비극 잉태

물론 과학자들에게도 신념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과학과 종교를 구분하는 한 가지 기준을 들자면 신념을 검증하고 포기할 용기가 그 신념을 믿고 추앙할 의지를 얼마나 극복하느냐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언제나 오류 가능성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 덕분에 오류를 스스로 고치는 능력을 길러왔다.

개개인으로서의 과학자는 신념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천하의 아인슈타인조차도 영원불멸의 정적인 우주론을 고집하며 자신의 위대한 성취인 중력장 방정식을 임의로 수정하기까지 했고, 끝끝내 확률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양자역학의 이른바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정적인 우주론은 1929년 허블이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함으로써 무너졌고,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대안으로 제시했던 이른바 ‘숨은 변수’ 이론은 20세기 후반을 거치며 실험적으로 부정되었다.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을 연결하는 중요한 징검다리였던 케플러는 자신의 신념을 어렵사리 극복한 사례에 속한다. 케플러는 17세기 초 행성운동의 법칙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행성의 공전궤도가 원궤도라는 플라톤 이래 오랜 신념을 가까스로 극복하고 타원궤도의 법칙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신념보다도 자신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스승 브라헤가 남긴 천문관측 데이터를 더 신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인으로서의 과학자와는 달리 새로운 지식창출 플랫폼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시스템은 그 자체의 오류정정 프로그램을 과학 활동의 필수 작동요소로 내장하고 있다. 과학이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학문 분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명성을 믿고 따르기보다 최종적인 실험결과를 따를 뿐이다.

반면 절대자를 추종하는 종교에서는 오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다. 현실에서 재현 불가능한 기적의 사례도 많다. 그래도 무오류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종교의 영역에서만 머문다면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것이 사회 일반의 영역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면 비극이 잉태된다. 지난 세기 지구의 절반을 지배했던 공산주의나 일부 전체주의 국가가 망한 이유들 중 하나는 당과 최고지도자의 무오류성을 현실 사회의 작동원리로 격상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과학 또한 특정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윤 대통령 ‘뉴욕 발언’·월성원전 문제, 원칙·상식 맞게 ‘과학 정신’으로 해결했으면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임해 임명했던 홍보수석마저 인정한 욕설발언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하고, 전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바이든’으로 들은 음성은 ‘날리면’을 잘못 들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나는 지구평평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는 음성파형을 분석해 시각적으로 대조하면 실제 발음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확률적 수치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들이민다고 한들 윤 대통령이 입장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대통령 자신이 무오류의 화신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런 윤 대통령이 ‘과학방역’ ‘과학기술강군’ 등 ‘과학’ 자체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무오류성과 과학은 양립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과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은 자신에게만 유리한 지식체계가 아니다. 과학의 본질은 오류 가능성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혹독한 검증의 바다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처럼 ‘기록문명’을 부정하는 행위는 단지 욕설파문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하는 수조에서 오염수가 누출되는 영상이 공중파 뉴스로 공개돼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 원전은 절대 안전하며 엄격한 관리하에 완전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업계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주장을 결정적으로 뒤엎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원전 확대를 주장한 윤 대통령에게는 분명히 불편한 진실을 담은 영상일 것이다. 월성원전이 이미 20년 이상 방사성물질을 계속 누출해왔을 가능성도 최근에 드러났다.

그러나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둔갑시키는 전력이라면 원전 오염수 누출 영상을 두고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거나 심지어 ‘친환경 청정식수 방류’라고 우길지도 모를 일이다. 욕설과 비속어 발언 및 그 해명과정에서의 거짓말은 직접적으로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주지도 않을뿐더러 그로부터 파생된 외교적 민망함 또한 나중에라도 어떻게든 회복할 수 있는 사안이다.

원전은 레벨이 다른 문제이다. 당장 자신과 정권에 불리하다고 ‘뉴욕 발언’ 사건을 모면하던 식으로 대처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는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과학기술 관련 지식을 얼마나 세세하게 알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사태를 파악하고 심각성의 정도를 인식해 얼마나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 지식이라는 최종결과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라는 방법론으로서의 과학, 지식창출 플랫폼으로서의 과학을 체득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윤 대통령이 ‘뉴욕 발언’ 사태를 원칙과 상식에 맞게, 과학의 정신으로 해결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월성원전 문제나 앞으로 또 있을지도 모를 위기 상황을 과학적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종필 교수

경향신문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 백래시의 소음에서 ‘반 걸음’ 여성들의 이야기 공간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