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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밥은 생명입니다,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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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생명을 가꾸는 존귀한 일이다. 농민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가치가 훼손된다. 농사는 생명을 살리는 땅과 더불어 하는 일이다. 먹지 않고 일할 수는 없다. 농업 노동을 가벼이 여기면, 삶의 뿌리가 말라간다. 농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경향신문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1930년 10월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은 ‘살인적인 쌀값 하락’으로 난리가 났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쌀값이 최저가격으로 폭락했다. 1930년 10월27일자 조선일보는 당시 상황을 크게 보도했다. 현미 한 섬(160㎏) 가격이 5~6년 전에는 36~37원이었다. 1930년 10월에는 18원50전까지 떨어졌다. 폭락의 원인은 대풍년이었다. 이전까지는 쌀 수확량이 평균 1300만석이었는데, 1930년에는 1929만6000석이나 되었다. 조선총독부 농림성은 “떨어지는 쌀값 막을 대책이 없다”고 포기선언을 했다. 당시의 유일한 대책은 쌀값 ‘운용자금을 1억원가량 늘려, 남는 쌀을 사들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큰 풍년이 축복이어야 했는데,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수탈 정책은 일본의 쌀값 안정이 최우선이었고, 조선의 쌀값 안정은 뒷전이었다. 제국주의는 약자에게 훨씬 가혹한 통치체제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농사의 가치를 경제적 효용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농산물을 상품화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농사를 편입시킨다. 일본의 ‘농(農)사상가’인 우네 유카타(宇根豊)는 <농본주의를 말한다>(김형수 옮김, 녹색평론사, 2021)에서 ‘자본주의와 농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1920년대 후반 즈음부터 일본에서 ‘농업은 식량을 생산한다’라는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 농사는 ‘쌀을 경제적 측면에서 생산’이 아니라 ‘천지자연과 마을 공동체를 지키고, 모두의 정신세계를 함께하’는 것이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에도 시대까지 농민들은 ‘해충’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농민들은 자연과 더불어 농사가 이뤄지기에, 자연재해도 인간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대국가가 성립되면서, 자연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기술이 강조되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자연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면서, ‘해충’이라는 말이 농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농사를 자본주의의 논리로 접근하자, 자연과 더불어 생명을 살리는 일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1930년 조선에서 대풍년이 들었음에도, 농민들이 고통받았던 것도 농사가 자본주의 경제적 체제에 편입된 것의 영향이 컸다. 식민지 조선은 농사를 대하는 태도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었다.

2022년 10월, 마치 1930년 10월처럼 쌀값 폭락으로 농민들의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20㎏당 5만4228원 하던 쌀값이, 올해 10월에는 4만725원까지 떨어졌다. 1977년 쌀값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폭인 24.9% 하락을 기록했다. 정부는 긴급히 1조원을 투입해 쌀 45만t을 사들이는 시장격리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쌀값 정상화를 위해 ‘양곡관리법’을 개정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농사의 가치를 경제적 가격 정상화로만 접근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한국인은 하루에 공깃밥 한 그릇 반을 소비한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 쌀값이 390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쌀을 먹는 양도 크게 줄었다. 1971년에는 일인당 134.8㎏의 쌀을 먹었는데, 2001년에는 88.9㎏을 먹었고, 2021년에는 56.9㎏을 먹었다. 이렇다보니, 정부에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쌀농사를 줄이고 대신 논에 콩과 같은 밭 작물을 심도록 장려하는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쌀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깃들어 있다. 쌀값 하락에 대응하는 정책적 접근, 법 개정 등 농촌을 위한 노력은 당연히 다각도로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쌀 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필요하다. 농사일은 자연의 질서에 의존하기에, 자본주의 경제체제 바깥에 있다. 시장의 논리에 온전히 내맡길 수 없는, 인간 노동의 근본 영역이기도 하다. 쌀로 생명을 가꾸는 농민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스스로의 생명을 존귀하게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쌀값이 떨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김지하의 시 ‘밥은 하늘입니다’의 한 구절을 옮겨 본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을 먹을 때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 밥은 내 몸을 겸허하게 만든다. 한국인에게 쌀은 생명이고, 하늘이다. 생명의 마지막 전선에 아파하고 있을 농민들에게 깊은 위로의 인사를 올린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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