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이슈 국방과 무기

6·25 전쟁영웅 美 육군 미야무라 하사 97세로 별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본계 이민의 아들, 미군 군복 입다

1951년 적군 50여명 사살 후 포로 돼

'명예훈장' 수훈… 韓 '태극무공훈장'도

6·25전쟁 당시 미 육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일본계 미국인 히로시 미야무라 예비역 하사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미국에선 최고 권위의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한국 정부로부터는 태극무공훈장을 각각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일보

6·25전쟁에 참전해 큰 공을 세운 일본계 미국인 히로시 미야무라 하사(오른쪽)가 1953년 백악관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한테 명예훈장을 받는 모습. SNS 캡처


30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 의회 명예훈장협회는 고인이 애리조나주(州) 피닉스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부인과는 지난 2014년 사별했고 유족으로 세 자녀와 다수의 손주가 있다고 협회 측은 덧붙였다. 고인의 손녀 중 한 명인 마리사 미야무라는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장교로 복무 중이다.

고인은 1925년 일본계 이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였기에 고인은 어린 시절을 탄광촌에서 보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우던 1944년 육군에 징집된 고인은 훈련을 마치고 유럽 전선에 배치됐으나, 나치 독일이 1945년 5월 항복했기 때문에 실전 경험은 많지 않았다. 1946년에 전역한 고인은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터지며 예비역에서 다시 현역으로 전환돼 재입대했다.

미 육군 3사단에 속한 고인은 1951년 4월 서울 인근 경기도의 기지를 지키던 중 중공군의 기습을 받았다. 당시 계급이 상병이던 고인은 총검을 들고 적과 육박전을 벌여 10여명을 사살했으나 인해전술을 앞세워 계속 압박하는 적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부하들을 모두 후퇴시킨 뒤 혼자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하며 버티다가 수류탄 파편에 맞아 부상한 채로 중공군에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훗날 명예훈장 공적서에 따르면 그날 전투에서 고인 혼자 사살한 적이 5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28개월간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한 고인은 정전협정 체결 후인 1953년 8월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미국 의회와 정부는 고인의 용맹함을 기려 1951년 12월 명예훈장 수훈자로 선정했다. 다만 그가 포로로 붙잡혀 있음을 알기에 행여 보복 대상이 될까봐 휴전 때까지 이를 비밀에 부쳤다. 나중에 1953년 10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이 고인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그때 고인의 계급은 하사였다. 전후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자동차 정비사로 일했으며 나중에는 서비스센터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세계일보

6·25전쟁 참전용사로 명예훈장을 받은 일본계 미국인 히로시 미야무라(1925∼2022) 예비역 하사.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훗날 고인은 미군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그는 “그저 내 부하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며 “내가 영웅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생전에 한국을 방문해 6·25전쟁 당시의 생생한 체험담을 들려주며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14년 7월 고인에게 무공훈장 가운데 1등급에 해당하는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