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도하의 기적’ 선배 고정운 인터뷰 “너희도 할 수 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고정운 김포 FC 감독이 1일 카타르 도하 카타르 국립 박물관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하|권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벤투호는 유럽 강호 포르투갈과 최종전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주축 수비수인 김민재(26·나폴리)가 다치고, 사령탑인 파울루 벤투 감독(53)은 벤치에 앉지 못하는 등 악재가 산적했지만 아직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한국이 오는 3월 0시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잡고, 우루과이가 가나에 이기거나 비긴다면 극적인 16강 진출이 가능하다.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팬들 사이에서 29년 만에 ‘도하의 기적’이 재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기적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도 마찬가지다. 1993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당시 극적인 본선행을 이끌었던 ‘적토마’ 고정운 김포FC 감독(56)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고 감독은 1일 카타르 도하 국립 박물관에서 기자와 만나 “아직 후배들이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1%의 확률만 있어도 도전하는 게 축구인”이라며 “기적의 땅인 도하에서 마지막까지 힘을 내달라”고 당부했다.

고 감독이 도하를 방문한 것은 대한축구협회가 지도자와 심판, 강사 등 전문가 그룹을 현지에 초청한 덕분이다. 그는 김포가 아직 K3리그에 머물던 지난해 우승한 공로를 인정받아 현지에서 축구 삼매경에 빠졌다.

고 감독이 잠시 잊고 지냈던 도하와 인연을 떠올린 계기는 지난달 28일 가나전 현장(2-3 패)이었다. 최종전을 앞두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선수들의 심정이 29년 전의 자신과 다를 바 없었다.

1993년 10월 한국은 도하에서 진행된 최종예선에서 이번 대회처럼 자력 진출이 불가능했다. 한국은 최종전에서 북한에 3-0으로 승리했지만 마지막 본선 티켓 한 장을 다투던 일본도 승리하면 탈락이었다. 실망 속에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던 당시 선수들은 일본이 이라크와 종료 직전 2-2로 비겼다는 소식에 환호했다. 한국에선 도하의 기적, 일본에선 도하의 비극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북한전에서 세 번째 골을 책임졌던 고 감독은 “내가 골을 넣고도 침울했던 벤치에서 갑자기 만세 삼창이 나오더라”며 “숙소로 돌아간 뒤에는 정몽준 회장님과 기차놀이까지 했다”고 떠올렸다.

도하의 기적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이끈 촉매제이기도 했다. 미국 월드컵 진출을 바탕으로 2002년 월드컵 단독 개최를 노리던 일본의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월드컵 본선 한 번 못 나간 나라였다. 결국, 극적인 공동 개최 속에 4강 신화까지 쓸 수 있었다.

고 감독은 도하를 방문해 한국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월드컵 개막전 공연을 하면서 문화의 힘을 선보였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인 손흥민(30·토트넘)은 출전 여부가 세계인의 관심사였다.

고 감독은 “(손)흥민이 뿐만 아니라 김민재(26·나폴리)와 이강인(21·레알 마요르카) 같은 유럽파라니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우리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후배들이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고정운 김포 FC 감독이 1일 카타르 도하 카타르 국립 박물관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하|권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고 감독은 과거와 달리 선수들의 투혼을 강조하지 않았으면 했다. 몸을 아끼지 않으며 피흘리던 축구는 자신들의 시대로 충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투혼은 열악한 그 시대라 어쩔 수 없던 일이라 생각해요. 후배들은 그보다 자신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뛰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규성(24·전북)은 유럽팀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소식이 있죠?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 다른 선수들도 유럽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그걸 목표로 뛰어주면 전 만족합니다.”

고 감독은 벤투호의 기적을 위해선 팬들도 도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얼굴을 크게 다쳐 수술대에 오르고도 마스크를 쓴 채 그라운드를 누비는 손흥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판을 받는 것에 마음이 쓰이는 그다. 고 감독에게 손흥민은 과거 성남 일화 입단 당시 동기였던 손웅정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고 감독은 “선수들은 팬들이 응원할 때 힘이 난다. 지금은 잠시 비판을 접어두고 힘을 실어줄 때”라고 말했다. 고 감독도 포르투갈전이 열리는 현장에서 후배들을 위해 목놓아 응원하기로 했다. 도하의 기적이 다시 일어난다면 기적의 주인공이라는 칭호도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포르투갈은 월드컵에서 한 번 이긴 상대가 아닌가요. 이번 대회에선 아르헨티나도 독일도 아시아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국도 할 수 있습니다.”

도하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 백래시의 소음에서 ‘반 걸음’ 여성들의 이야기 공간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