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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원정 여행만 20년째, 이런 광경은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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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여행객의 카타르2022] 우표 모으고, 축구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은 월드컵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싶다. 월드컵이라는 전 지구적인 이벤트에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이번의 카타르 월드컵 현장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개인에 대한 모든 분류 기준을 지워버린 채, 그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명명 아래에 모인 우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현재를 즐기고 있으니까.

장면 하나. 월드컵을 기념하는 우표를 수집하다

"카타르 중앙 우체국 앞에서 3시에 만나요."
"네! 우체국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흡사, 윤도현 밴드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떠올리게 하는 대화로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월드컵 기념우표를 어떻게든 구하는 것이다. 세계에 수많은 수집가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수집이 '우표'가 아닐까?

우리의 여행 동지들 중에도 우표를 모으는 친구가 있었고,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부터 이 친구를 쫓아서 각 나라의 중앙 우체국을 탐방하는 중이다. 오늘도 봐야 할 경기가 저녁 10시였으니, 낮 동안은 우체국에서 우표를 구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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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스부르크의 우체국 ▲ 러시아 월드컵에서 들렀던 우체국의 풍경입니다. 어딘가, 근사한 성의 선룸에라도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어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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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도하 우체국 풍경 ▲ 도하우체국은 여기저기 소파가 많이 놓여있었고, 한 쪽 벽에는 사서함으로 빼곡했습니다. 카페의 느낌이었어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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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중앙 우체국은 레드라인 지하철의 코니시 역에서 아주 가깝다. 코니시 역에서 나오면 바로 팬존이기도 해서, 축구를 보러 온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일행을 만나서 들어선 중앙 우체국은 우리나라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지난번 러시아 월드컵 때 상트에서 들렀던 우체국은 어딘가 궁전 같은 느낌이었는데, 오늘의 카타르는 카페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찾았던 층은 창구업무보다는 사서함 업무가 더 많은지 빼곡하게 금고처럼 위치한 사서함이 눈길을 끌었다.

기념우표를 사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 앞의 일본인 관광객들도 한참을 공 들여 카타르 월드컵을 기념하는 다양한 우표들을 구입하고 있었다. 일행의 설명에 따르면, 카타르 월드컵 기념우표는 2년 전부터 계속 발행되어 왔다고 한다. 발행 시점이 길어지니 이미 2년 전에 발행된 우표는 구하기도 어렵다고 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우표들을 사들고 나오니 뭔가 해야 할 일을 끝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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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 기념우표 득템! ▲ 카타르 월드컵 기념우표를 구했습니다. 경기장, 조별리그, 공인구에 대한 기념우표를 샀는데, 너무 뿌듯해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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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둘. 월드컵 보러 왔으니 축구도 한 판 해야죠!

"오늘 5시 반까지 보내드린 경기장으로 오세요! 축구 한 판 합시다!"

숙소에서 같이 지내는 여행 동지가 메신저로 장소를 하나 보내면서 이같이 말했다. 뭔 얘기지, 한참을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놀랍다. 월드컵을 보러 온 친구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일 테고, 이번 월드컵은 어차피 장소를 옮기느라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도하에 모여있는 한국인들끼리 축구를 한 판 하자는 얘기였다.

와, 놀랍다! 축구 원정 여행을 20년째 다니고 있지만, 축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직접 하는 것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도시 간 이동이 거의 없고, 거의 대부분 도하에서 머물고 있으니 가능한 계획이었다. 재밌을 것 같았다. 게다가, 섭외가 된 몇몇 친구들은 축구를 하겠다며 도하에 축구화까지 갖고 왔다고 한다. 세상에!

"사람을 22명 이상 모아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같이 하시죠?"
"저요? 저 얼마 전에 팀에서 방출돼서 축구 자존감 바닥인데요... 민폐라고요! 응원은 할게, 놀러 갈게요!"


대한민국의 2차전 경기를 끝낸 후라서 목소리를 잃었지만, 그래도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월드컵을 보러 온 것이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축구화까지 짊어지고 왔는지도 궁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네 언니들 팀에서도 실력 차이로 뛸 수 없는 내가 낄 자리는 아닌 것 같지만, 이런저런 궁금함을 가득 안고 구글에 찍힌 장소로 이동했다. 마침 한국 팀 경기가 많이 열리는 에듀케이션 시티역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오늘 보러 가야 하는 경기장까지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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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공을 차는 사람들 ▲ 그냥 그렇고 그런 동네 축구시합일 줄 알았는데, 축구에 진심인 사람들의 진지한 경기였어요. 다들 어찌나 잘 하는지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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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반쯤 약속 장소에 도착했더니, 오늘의 경기가 열리도록 도움을 주신 한인 민박의 가족분들이 먼저 와 계셨다. 며칠 전 한 번 만난 사이라 반갑게 인사했더니 알아봐 주셨다. 또 반가운 이가 있었으니, 이 집의 막내인 아홉 살짜리 축구 선수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풀고 있었는데,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래도 아홉 살의 친구가 뛰기엔 피치가 너무 넓어 보였는데, 경기장을 누비는 발 놀림은 성인과 다름이 없다. 오늘의 경기, 기대되는데!

잠시 후 약속시간이 되자, 경기장에 모인 사람은 24명이 됐다. 사람이 다 모일까 걱정하던 숙소의 동료는 그제야 안도했고, 예약한 시간이 되었다며 지체 없이 경기를 시작했다. 셔츠의 색깔에 따라 자연스럽게 흰색과 빨간색으로 나눠졌고, 우리의 꼬마 선수는 흰색 팀에서 꼬마 선수의 아버지는 빨간 팀에서 뛰게 되었다. 이것도 또 재밌는 관전 포인트!

그런데, 관전 포인트는 여기에만 있지 않았다. 다들, 축구에 너무 진심인 거다! 그냥 동네의 친선경기쯤으로 생각하고 보기 시작한 나는, 어느샌가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그들의 플레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와! 월드컵을 보러 카타르까지 온 친구들은, 이만큼 축구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경기가 끝나는 8시에는 오늘 참여한 열 명 정도의 친구들이, 근처의 마흐메드 빈 알리 경기장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기도 볼 예정이라고 하니, 역시 젊음이 좋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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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을 찍는 뒷모습을 찍은! ▲ 어제 모였던 사람들끼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주최했던 한인민박집에서 사진을 찍고 계시는데, 그 모습을 담았더니 예쁘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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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축구 경기는 경기장을 예약한 2시간을 꽉 채워서 끝이 났다. 치고받는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아홉살 짜리 꼬마 선수의 골이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

축구를 즐기는 방법, 월드컵을 즐기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그것이 주는 즐거움과 환희는 어떻게든 그들의 삶에 새로운 기운이 될 것이라는 것도 믿게 됐다. 오늘 만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월드컵의 여정에서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점점 더 기대되는 월드컵 여정이다.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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