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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6 (월)

화장실도 없던 반지하 주택, ‘노숙인 자활공간’ 등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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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지난해 9월부터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

C·D 등급 10곳, 제설장비 보관· 자활사업 공간 등으로 활용

‘주거 부적절’ 반지하주택 모두 소멸···비주거용으로 ‘용도 변경’ 추진

경향신문

서울 성동구 송정동 주택가의 한 반지하가구 출입문. 문 높이가 1m가 채 되지 않아 몸을 잔뜩 구부려야 출입할 수 있다. 성동구는 세입자를 지상층으로 이주시키고, 해당 공간을 제설장비 등 안전자재 보관소로 활용하기로 했다. 성동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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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송정동의 주택가. 한 다가구주택 대문 옆으로 성인 허리춤에 못미치는 높이의 문이 딸려 있었다. 문을 열면 3평 남짓한 반지하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화장실이 없고, 수도와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불과 한 달여 전까지도 거주자가 있던 곳이다.

반지하주택 전수조사를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성동구는 이처럼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반지하가구를 비주거용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성동구는 지난해 9월부터 총 5279곳의 반지하주택을 전부 조사해 결과에 따라 5개 등급(A+, A, B, C, D)으로 분류했다. 거주용으로 부적합한 곳은 C·D등급으로, 총 10가구가 발굴됐다.

지난 21일 둘러본 이 반지하방은 D등급 거주지다. 출입문은 1m 높이에 불과해 허리를 한참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에 살던 A씨는 집에 화장실이 없어서 주인집 마당에 딸린 화장실을 이용했다. 샤워시설이나 세면대도 이용할 수 없었다.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난방과 조리도 불가능했다. A씨는 제대로 조리되지 않은 식품, 곰팡이가 핀 음식을 먹곤 하다가 건강이 악화됐다고 한다.

성동구는 A씨를 지난 10월 지상층으로 이주시켰다. 반지하 공간은 수리해 제설장비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이용하기로 했다. 거주지로서 최소한의 기준을 갖추지 못한 곳에 다시 세입자가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성동구는 거주에 부적합한 반지하 공간을 구청이 활용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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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생활하던 3평 남짓 공간의 모습. 염화칼슘과 삽 등 성동구 제설장비가 보관되어 있다. 유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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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A씨에게 받던 월세 15만원은 성동구가 부담한다. 성동구 관계자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면 이해관계가 복잡한 매입 방식보다 임대 방식이 낫다는 게 현장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 반지하방과 같은 집에는 또 다른 ‘D등급’ 공간이 딸려 있다. 이곳 역시 A씨가 살던 곳과 마찬가지로 거주지 안에 화장실이나 샤워시설이 없었다. 지난 9월 이곳에서 인근 1층 주택으로 이주한 주영심씨(70)는 “목욕도 못하고, 보일러실에 쭈그려 앉아 세수도 겨우 했다”며 “곰팡이는 말도 못하게 피었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이곳을 수리한 후 공공 용도인 ‘희망반올림연구소’로 조성했다. 이곳에선 노숙인 자활사업의 일환으로 버려진 화분에 반려식물을 심어 취약계층에 전달하는 ‘희망 화수분 사업’이 이뤄진다. 동주민센터 안전용품 보관 창고로도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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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공간에 새로 마련된 희망반올림연구소의 모습. 버려진 화분에 반려식물을 심어 취약계층에게 전달하는 ‘희망 화수분 사업’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성동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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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성동구에 남은 C·D등급 반지하 거주지는 모두 사라진 상태다. 성동구 관계자는 “C·D 등급 반지하 거주지 10곳 중 5곳은 집수리를 통해 등급을 상향했고, 나머지 5곳은 공공이 관리하는 등 비주거 용도로 유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수조사부터 C·D등급 거주자 주거상향에 이르기까지 현장 공무원들의 노력도 컸다. 거주자와 집주인을 설득하고, 대체 거주지를 구하러 발품을 함께 팔았다. 새 거처의 보증금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거취약계층 임대사업을 이용해 저리로 빌리고, 월세와 보증금 이자는 주거급여로 충당할 수 있도록 도왔다. C·D등급 거주지의 특성상 세입자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 등 주거취약계층이다.

주거용으로 부적합한 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을 ‘위험거처’로 정하고, 위험거처 집수리와 거주자 주거상향을 지원하는 성동구 조례도 이달 초 시행됐다. 성동구는 특히 위험거처 중 화장실이 열악한 거주지를 중점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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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위험거처 집수리 1호 사례로 반지하 주택 화장실이 수리된 사례. 왼쪽이 수리 전, 오른쪽이 수리 후. 성동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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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주거지에서 만난 주씨는 “화장실을 집 안에서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반지하라고 다 못사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화장실은 있어야 하고 방수 처리도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기존 임차인에게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임대인은 기존 임대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지역사회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었다”며 “주거안전과 지역상생이라는 원칙 하에 주거 부적합 반지하 주택을 멸실해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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