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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3 (금)

22년간 섬마을 1인진료…"주민과 동고동락…딸이고 며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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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자 추봉보건진료소장 김우중의료인상…"의료취약지 환경개선 도움 되길"

연합뉴스

주민들과 보건진료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정향자 추봉보건진료소장
[정향자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집집마다 방문해 딸 역할도 하고 며느리 역할도 하고, 진료도 보고 어르신들 행정 업무도 돌봐드리고…일인다역으로 살았죠."

30년의 보건진료소 근무 기간 중 22년 동안 경남 통영시의 4개 섬을 돌며 의료취약지역 주민을 진료한 정향자(53) 추봉보건진료소장은 주민들에게 단순한 이웃 이상이다.

정향자 소장은 6일 대우재단이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장기간 인술을 펼쳐온 의료인들에게 시상하는 제3회 김우중 의료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정 소장은 대학 재학 중 지원한 공중보건장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1994년 통영 노대보건진료소에 첫 부임했다. 당시 공중보건장학제도는 간호대학 재학생들을 장학생으로 선발해 졸업 후 지역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일정 기간(최대 3년) 의무 근무를 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새내기 간호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통영 노대도의 모든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보건진료소장이 됐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도 3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연고도 없는 오지에서 '젊은 여자 소장'으로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꼭꼭 숨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는 그는 1인 근무 체제인 보건진료소에서 밤낮으로 발생하는 환자들을 모두 혼자 돌봐야 했다. 야간에 술을 마시고 다친 사람이나 새벽에 가정폭력으로 부상한 주민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다.

섬 어디든 언제든 진료가 필요한 곳에 주저 없이 달려가는 정 소장의 모습에 주민들도 마음을 열었고,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던 날 정 소장은 섬마을에 남기로 결심했다.

병원에 가기가 힘든 곳에서, 다치거나 아픈 분들이 보건진료소에 오셔서 회복되고 건강해지시는 모습을 보며 여기만큼 내가 필요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굳게 먹은 마음에도 보건진료소 근무는 쉽지 않았다. 정 소장은 22년간 노대, 학림, 곤리, 추봉 4개의 섬 지역에서 일했다. 섬에 태풍이 오면 비상이다. 태풍으로 쓰러진 담벼락이 깔려 주민이 대퇴골 골절을 입은 적이 있었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밤 무너진 집에서 부상자를 구조해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밤새 간호했던 경험은 아찔한 기억이다.

폐암으로 호흡 곤란이 와 사망 직전까지 간 어르신에게 통영까지 배타고 가는 내내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살려낸 기억도 있다.

힘든 근무를 버틸 수 있게 한 건 주민들과의 유대감이었다. 학림보건진료소를 떠날 때 온 주민이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 나와 '눈물바다' 이별식을 하기도 했다.

정 소장의 뜻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가족들 덕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마저도 배편이 여의치 않으면 가족들을 볼 수 없는 정 소장 대신 다리가 아픈 자녀의 수술실을 지키고 온갖 집안 살림을 챙긴 남편의 '외조'는 가장 힘이 됐다.

연합뉴스

제3회 김우중의료인상 수상자 정향자 추봉보건진료소장
[대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 소장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취약지역 의료 붕괴의 현실을 알리고 환자들과 후배 의료인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려 노력 중이다.

"30년 전과 비교해 환자 자체가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외면하면 안 됩니다. 도서 벽지 지역은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아직도 빠른 처치가 힘들어요."

그는 2010년 통영 용호·안정보건진료소에 폐소 결정이 내려졌을 때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취약지역 보건진료소를 두고 볼 수 없다"며 보건진료소 부지를 기부채납한 주민들과 함께 개소 운동에 동참, 진료소 복원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취약지역 의료 환경을 개선해 보건진료소에 근무할 후배 의료인들과 방문하는 환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그는 수상소감을 묻자 "선배 의료인들 덕"이라고 답했다.

"저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진료를 시작하신 선배들 덕분에 보건진료소 의료환경도 많이 나아졌어요. 그분들의 열정과 에너지 덕분에 저도 따라 힘을 낼 수 있었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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