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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3 (토)

동해안 따라 퍼지는 소나무의 ‘붉은 비명’…“사실상 방제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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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소나무재선충병’ 3차 대확산 현실화

경향신문

경북 포항 호미곶면 대동1리의 ‘동네 마스코트’인 해송(곰솔)이 지난 23일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누렇게 변해 있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감염 전인 2022년 5월 촬영된 모습.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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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확산 감소에 예산 감축
3년 만에 감염나무 3배 껑충
전문가 “외곽지부터 막아야”
확산 방지 방제시스템 절실

경북 포항 호미곶면 대동1리에서 지난 23일 만난 주민 김모씨(60)가 마을 앞 바위 위에서 누렇게 변해버린 해송(곰솔)을 바라보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뒤 수십년간 해풍과 파도를 받아내며 마을을 지킨 해송잎의 빛깔이 변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한번 걸리면 사실상 치료가 불가능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리면서 ‘죽음의 단풍’이 든 것이다. 이 병의 고사율은 100%다.

김씨는 “마을의 소나무 절반 이상이 재선충병에 걸렸다”며 “완전히 말라 죽어 쓰러진 나무도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6일 포항에서 경주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 곳곳에서는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 남은 채 죽어버린 소나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잎이 붉게 타들어 죽어가는 소나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 마치 가을 단풍이 든 숲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경북 동해안을 따라 거대한 감염벨트가 형성됐다”며 “정확한 피해 면적을 제대로 조사하기조차 힘들 정도이고, 사실상 방제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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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경북 포항에서 경주까지 이어지는 도로 옆 숲에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잎이 누렇게 변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녹색연합은 “경북 동해안을 따라 거대한 감염벨트가 형성됐다”며 “사실상 방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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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재선충병 3차 대확산이 현실이 되고 있다. 2007년과 2017년에 이어 약 7년 만이다. 전문가들은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심각했던 일본처럼 국내에서도 소나무가 절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은 87만그루로 추정된다. 지난해 107만그루에서 20만그루 감소한 수치다. 다만 이는 올해 방제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을 경우 추산되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어느 때보다 더 우려스럽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예산과 인력 지원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방제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선충 방제는 감염병을 옮기는 매개곤충(솔수염하늘소·북방수염하늘소)이 활동하지 않는 겨울에 감염된 나무와 감염 가능성이 있는 나무를 베어내는 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정확한 예찰과 제거할 나무의 범위를 지정하는 설계 및 인력 투입 등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나무 1그루당 15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정부는 재선충병 감염나무가 줄어들기 시작한 2018년부터 재선충 감염·고사 소나무 제거 예산을 줄여왔다. 2017년 596억원이던 예산이 2022년 109억원까지 감소했다. 그사이 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는 2020년 30만8000그루에서 지난해 107만그루로 3배 넘게 늘었다.

재선충병을 어느 정도 통제했다는 정부의 방심과 예산 부족에 따른 소극적 방제 움직임이 누적돼 3차 확산을 불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데도 방제 최일선에 있는 지자체의 방제 담당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통상 지자체 소속 방제인력은 1~2명 정도인데 이들이 담당하는 산림은 수십만㎡에 달한다.

한 산림기술사는 “재선충 방제사업이 돈을 들여도 크게 티가 나지 않다보니 자체 예산을 들이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치적사업에만 집중하는 단체장들의 성향도 재선충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도 원인이다. 온난화로 인해 재선충을 소나무로 옮기는 매개곤충의 활동 기간이 늘고 개체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소나무 피해도 커진 것이다. 임재은 산림기술사는 “지자체에서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면서 정부 예산도 적절히 배분되지 못하고 있다”며 “재선충 방제는 기술뿐만 아니라 예산과 지자체장의 의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선충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염목 발생지 외곽의 확산 우려지역인 선단지를 중심으로 방제하고, 이미 감염목이 많은 중앙부는 후순위로 방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 지자체들은 외관상 감염목이 많은 중앙부에 방제를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방제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해풍을 막아주는 해안림과 마을숲 등 지킬 가치가 큰 곳에 대한 방제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정규원 산림기술사는 “문화재 등 반드시 지켜야 할 지역을 정하고 주변 방제를 강력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전문위원은 “소나무를 살릴지, 포기할지에 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소나무가 사라지면서 발생하는 생태계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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