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4 (일)

“한국 여성들, 왜 아이 안낳나요?”…BBC가 직접 들은 진짜 이유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분기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지며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작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진 가운데, 영국 공영 방송 BBC가 1년간 한국 여성들을 직접 만나 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를 소개했다.

BBC는 28일(현지시각) 서울 특파원 발로 ‘한국 여성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통해 한국의 저출산 배경에 대해 조명했다.

BBC는 “전세계적으로 선진국의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지만 한국만큼 극단적인 사례는 없다”며 “저출산 정책 입안자들이 정작 청년들과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와 지난 1년간 전국을 다니며 한국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먼저 남성의 육아 참여도가 낮다는 의견이 나왔다.

TV 프로듀서 예진(30)씨는 5년 전 비혼과 비출산을 결심했다. 예진씨는 이런 결심을 한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는 집안일과 육아를 똑같이 분담할 남자를 찾기 어렵고 미혼모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고 했다. 두 자녀를 둔 여성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전에 사는 웹툰작가 천정연씨는 “남편이 육아나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아 홀로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근무 환경도 문제로 꼽혔다.

BBC는 “한국의 노동시간은 길기로 악명높다”고 했다. 예진씨는 퇴근 시간인 저녁 6시를 훌쩍 넘긴 8시까지 일을 하다보니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울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월요일에 출근할 힘을 얻기 위해 주말에 종종 링거를 맞곤 하는데, BBC는 “그는 이 일이 일상인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고 전했다.

출산 후 겪게 될 여성들의 ‘경력 단절’ 문제도 언급됐다.

예진씨는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있다”며 여동생과 뉴스 진행자 두 명이 출산 후 퇴사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여성(28)도 육아휴직 후 해고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된 경우를 보고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결혼한지 6년된 어린이 영어학원 강사 스텔라(39)씨는 “아기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우울해질 것 같다”며 “내 경력을 사랑하고 내 자신을 돌보는 게 좋다”고 했다.

조선일보

서울 시내 한 구청에 구비된 출생신고서.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BBC는 한국 경제가 지난 50년간 고속 발전하면서 여성을 고등 교육과 일터로 밀어 넣고 야망을 키워줬지만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한 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짚기도 했다.

천정연씨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고 무척 화가 났다”며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다들 우울해하는 걸 보니 (내가 겪는 일이) 사회적 현상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높은 주거비와 사교육비도 문제였다.

스텔라씨는 가족을 위해 일을 그만둘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집값이 비싸 그러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점점 더 멀리 밀려나고 있지만 아직 집을 장만하지 못했다.

특히 BBC는 한국의 사교육 시장을 ‘독특한 점’으로 평가했다. 아이들이 4세부터 수학, 영어, 음악 등의 비싼 수업을 받는데, 이를 거부하면 자녀를 실패하도록 방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BBC는 설명했다. 스텔라씨는 “아이 한 명당 한 달에 700파운드(약 120만원)까지 쓰는 걸 봤는데 대부분이 감당하기 버거워한다”면서도 “이런 걸 안 하면 아이들이 뒤처진다”고 말했다. 평생 공부하고 경쟁하느라 지쳤다는 민지(32)씨는 “한국은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 정자 기증을 통한 임신이나 동성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점을 모순으로 여긴다고 BBC는 전했다. 양성애자이면서 동성 파트너와 지내는 민성(27)씨는 “가능하면 (아이를) 10명이라도 갖겠다”고 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2023년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이다. 사상 첫 0.6명대 분기 출산율이다.

BBC는 “인구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합계출산율은 2.1명”이라며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100년에는 한국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BBC는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을 구조적 문제로 다루겠다고 밝혔지만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김자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