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4 (일)

[책의 향기]아베의 뻔뻔한 변명 vs 日 젊은 학자의 역사반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무라야마 담화 부정 아베 前총리… 회고록엔 “일본만 식민지배 했나”

비리의혹 부정 등 ‘불성실한 회고’… 日학자, 한일병합 양국 사료 분석

“통치 정당성 무리하게 얻으려 해”… 반성적 사고 속 간극 좁히려 시도

◇한국 병합/모리 마유코 지음·최덕수 옮김/392쪽·2만2000원·열린책들

◇아베 신조 회고록/아베 신조 지음·유성운 옮김/456쪽·2만5000원·마르코폴로

동아일보

독일 베를린 시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소녀상은 일본 식민지배의 기억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동아일보DB


동아일보

“‘무라야마 담화’의 실수는 선악의 기준으로 일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전제하에 사죄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2월 일본에서 출간된 ‘아베 신조 회고록’에 실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말이다. 번역 후 한국에서 새로 출간된 이 회고록은 아베 전 총리가 퇴임 후 2020년 10월부터 약 1년간 요미우리신문 기자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현직 일본 총리 최초로 한국의 식민 지배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죄한 담화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는 이 담화를 사실상 부정하고, ‘자기반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다.

회고록엔 “일본만 식민지배를 한 것처럼 여겨진다”는 억울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 전 서양 각국도 식민지배를 했을 것”, “벨기에 국왕이 잔혹 행위를 했다며 콩고 공화국에 사과한 것은 2020년” 등 온통 ‘남 탓’하는 그의 말들로 가득하다. “일본은 과거 몇 번이나 사과해 왔습니다. ‘여러 차례 사과를 시켰으면 이제 됐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뻔뻔하면서도 솔직한 ‘가해자’스러운 태도는 다소 말을 잃게 만든다.

“역사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 등과의) 싸움에서 일본이 왜 이렇게 약하냐”고 묻는 신문기자들의 질문 자체에도 “일본은 억울하다”는 인식이 묻어난다. 아베 전 총리는 이에 대해 “역사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풍화될 테니 그냥 넘어가자는 자세라 외무성이 싸워오지 않았다”며 “내 정권 들어서는 열세를 만회하려 했다”고 변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묻힌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길”이라고 합리화했다.

책을 읽으면 한국에서 아베 전 총리가 그저 대표적인 혐한파 우익 정치인 정도로 평가 절하되는 이유가 이해된다. 2022년 총격으로 사망한 그는 일본에선 8년 8개월을 재임한 ‘최장수 총리’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우익 발언은 한국인의 정서와는 확실히 유리됐다. 한일 관계뿐 아니라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을 받는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에 대해 “재무성의 책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회피하는 등 다방면에서 성실한 회고(回顧)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동아일보

‘한국 병합’의 저자 모리 마유코.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가 비판받는 것을 억울해했다. 반면 모리는 한일 양국의 역사 자료를 제시하면서 “일본이 무리하게 한국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얻으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열린책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반면 모리 마유코(森万佑子)의 신간 ‘한국병합’에선 역사에 대한 젊은 연구자의 자기 반성적 면모가 엿보인다. 저자는 서울대에서 한국 근대사를 배운 연구자로서 양국 사료를 고루 제시하며 한일 병합 과정을 촘촘히 파헤친다. 혐한과 케이팝이 공존하는 일본에 정작 균형 잡힌 사료에 근거해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저서가 없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껴 집필했다.

일본인임에도 한국을 주어로 책을 집필한 점이 흥미롭다. 기존 대다수 일본인이 쓴 책들은 ‘일본이 왜 한국을 병합했는가’에 집중한 경향이 컸지만, 이 책은 ‘대한제국이 성립 후 붕괴하는 과정’으로 눈을 돌린다. 대한제국 황제와 정부를 주인공으로 두고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한 인물들을 분석한다. 모리는 “일본이 한국인으로부터 통치에 대한 합의와 정당성을 무리하게 얻으려 했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피력한다.

1990년대 이후 양국 연구자들이 수행한 한일 병합 관련 연구에서 발생한 논쟁도 압축적으로 정리했다. 일본은 ‘국제법’을, 한국은 ‘역사학’을 근거로 대립하는 가운데 모리는 이 책이 한일 양국의 생각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서양의 핑계를 대며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우익 정치인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이유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