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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값싼 플라스틱의 공습…이 산업이 위험해 보인다[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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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환경 이야기냐고요? 아니, 산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공장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글로벌 플라스틱 시장의 공급과잉이 위험수준이란 경고음이 커지는데요.

왜 플라스틱 공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을까요. 더 많은 플라스틱, 더 값싼 플라스틱은 얼마나 위험할까요. 오늘은 플라스틱 시장의 역사적 공급과잉을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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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편리하고 싸서 위험한 플라스틱.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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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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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소비의 민주화 시대

플라스틱은 너무 흔해서, 기술 진보나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요? 플라스틱의 화려한 과거를 모르시는군요. 1959년 동아일보 기사 속 표현을 인용하자면, 플라스틱은 ‘20세기의 총아’이자 ‘세기의 혁명’을 일으킨 놀라운 신소재입니다.

플라스틱은 유연하고 강합니다. 얇은 필름부터 단단한 케이블까지, 모든 형태로 만들 수 있죠. 닳지도 않아요. 얽힌 종이클립처럼 반복되는 분자 사슬로 이뤄진 ‘중합체’이기 때문입니다.

당구공용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기 위한 최초의 플라스틱(셀룰로이드)이 개발된 건 1869년이지만, 대량생산이 시작된 건 제 2차 세계대전부터이죠. 군인들이 플라스틱 헬멧과 비닐 비옷을 착용하고, 나일론 낙하산을 타면서 플라스틱 생산량이 급증했고요. 전쟁이 끝난 뒤엔 소비자 시장에서 플라스틱이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플라스틱 포장재는 식품산업, 합성섬유는 의류산업의 혁명을 가져왔고요. 플라스틱 덕분에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저렴한 제품이 끝없이 넘쳐나게 됐습니다. 누구나 플라스틱 제품을 누릴 수 있는 ‘물질소비의 민주화’ 시대가 열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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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가 전망한 2060년까지의 전 세계 지역별 플라스틱 사용량. 인도와 아프리카가 향후 플라스틱 소비 증가를 주도할 거란 전망이다. OECD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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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편리한 플라스틱에 인류는 금세 중독됐습니다. OECD 보고서(2022년)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소비량은 지난 30년 동안 4배로 불어났죠. 그 소비량이 앞으로 줄어들 거란 예측이나 조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OECD는 2060년엔 플라스틱 소비량이 2019년(4.6억 톤)의 3배 수준(13.2억 톤)으로 증가할 거라고 내다봅니다. 그 어떤 다른 소재보다도 더 빠르게 성장할 겁니다.

빨대·비닐봉지 같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제한하는 국가가 많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 플라스틱은 규제 논의를 피해 가고 있습니다. 자동차 범퍼나 사무실 깔개, 주택의 PVC 파이프와 창호를 무엇이 대체할 수 있을까요. 합성섬유 혼방을 모두 제외한다면 옷장의 옷이 과연 몇벌이나 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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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빨대 규제조차 어렵다. 플라스틱 사용은 자꾸 늘어만 간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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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플라스틱 공급과잉

인류는 플라스틱 소비를 멈추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은 플라스틱을 소비하게 되겠죠. 환경엔 암울할지 몰라도 플라스틱을 만드는 화학 기업엔 좋은 소식인데요.

하지만 글로벌 석유화학 업계는 잔뜩 가라앉아있는 상태입니다. 2022년 시작된 다운사이클(하락기) 한복판에 있죠. 물론 사이클은 늘 있었고, 보통 3~4년 주기로 반복되기 마련인데요. 문제는 이게 그냥 지나가는 사이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금 같은 암흑기가 꽤 오래 지속될 수 있단 비관적 전망이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대표적인 플라스틱이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이죠. 원자재시장 분석기업 ICIS이 지난달 웨비나에서 이 산업을 전망했는데요. 핵심 내용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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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프로필렌의 글로벌 수요(초록 막대)와 공급량(파란 막대)을 보여주는 그래프. 검은 선은 공장 가동률로, 과거 87% 수준에서 70%대로 급락한 걸 알 수 있다. ICIS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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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프로필렌(PP) = 앞으로 5년(2024~2028년) 동안 글로벌 수요가 연평균 4.2% 성장할 겁니다. 아시아 신흥국의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이 전 세계 PP 수요를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생산능력도 크게 늘면서 공장 가동률은 지난해(79%)보다 더 낮아질 전망입니다. 2019~2021년 87% 안팎이었던 가동률이 급락한 뒤 회복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PP 시장의 공급과잉은 구조적입니다. 경쟁 심화로 생산업체는 과거의 마진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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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에틸렌의 연간 글로벌 수요 증가분(초록 막대)과 생산능력 증가분(파란 막대)을 비교해 보여주는 그래프.  생산능력이 수요보다 더 빨리 증가하면서 생산시설 가동률(검은색 실선)이 뚝뚝 떨어진다. 2000~2022년 글로벌 가동률 평균은 86%였다 . ICIS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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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에틸렌(PE)= 글로벌 PE 수요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능력이 더 빨리 증가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지난해 가동률은 81%였고요. 올해 이후에도 계속 내려가 2028년엔 74%까지 떨어질 전망입니다. 과잉생산이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점점 악화할 거란 뜻입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운영비용이 높은 곳(유럽)부터 영향을 받을 겁니다.

요약하자면 플라스틱 수요는 늘지만, 그보다 공급이 훨씬 더 빨리 늘어나서 큰일입니다. 당분간 공급과잉은 점점 더 심해질 겁니다. 수년 동안 유례없는 수준으로 공장 가동이 멈추고, 마진이 쪼그라들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ICIS의 존 리처드슨 컨설턴트는 이렇게 분석합니다. “장기 데이터는 시장이 사상 최고 수준의 공급과잉에 직면해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는 우리가 직면한 석유화학의 뉴노멀입니다.”

플라스틱이 석유의 미래?

지금의 공급과잉 사태는 중국 영향이 큽니다. 코로나 이전엔 중국의 플라스틱 수요가 연평균 10% 이상 증가해, 끝없이 팽창할 것만 같았죠. 중국을 포함한 각국 기업들이 이를 믿고 투자를 왕창 벌여놨는데요. 2021년 중국 부동산 거품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크게 둔화하고 말았습니다. 공장은 지어놨는데 팔 곳은 없고, 제품 가격은 뚝뚝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계 최대 화학회사인 독일 바스프는 지난해 2600명(전체 직원의 2%)을 해고한 데 이어, 올해 또다시 추가 감원 계획을 발표했죠. 단기간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보고 허리띠를 조이는 건데요.

하지만 대부분 기업은 공장설립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공장이 세계 곳곳에서 지어지고 있죠. 미국 석유회사 셸(Shell)은 2022년 11월부터 단계적으로 펜실베이니아 폴리에틸렌 단지를 열고 있습니다. 완공되면 축구장 300개 크기로, 총비용이 무려 14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엑손모빌은 중국 광둥성에 총 100억 달러를 들여 건설 중인 석유화학 단지를 2025년 완공할 예정이고요. 셰브런은 지난해 합작사인 셰브론필립스케미칼을 통해 미국 텍사스와 카타르에 대형 화학 플랜트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지난해 사우디 주베일에 대규모 석유화학단지 ‘아미랄’ 을 착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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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회사 입장에서 플라스틱은 ‘화석연료 생명 연장’을 위한 좋은 도구이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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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황이 이미 바닥인데, 왜 이렇게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는 걸까요. 치킨게임이라도 벌이겠다는 걸까요. 이와 관련한 배런스의 최근 분석이 눈에 띄는데요. 대형 석유회사들이 휘발유에서 플라스틱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관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세계 휘발유 소비는 곧 정점을 지날 가능성이 크다고 하죠(JP모건은 정점을 2025년으로 예상). 천천히, 하지만 영구적으로 전 세계 휘발유 소비가 줄어들 거란 전망이 대세인데요. 석유회사 입장에선 이대로 앉아서 두고 볼 수만은 없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바로 플라스틱인 겁니다. 적어도 휘발유처럼 몇 년 안에 수요가 줄어들 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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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폴리에틸렌 생산비용을 비교한 그래프. 원료 확보가 용이한 중동과 북미 지역은 비용이 낮고, 유럽이나 남미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ICIS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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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대부분 화석연료로 만들어지죠. 천연가스와 석유를 값싸게 얻을 수 있는 지역과 기업이 비용 측면에서 단연 유리한데요. 미국과 중동의 석유기업은 그런 면에서 경쟁력이 월등합니다. 즉, 플라스틱은 화석연료를 수익화하기에 또 다른 좋은 방법이 됐습니다.

플라스틱을 포함한 화학제품 시장은 연료(휘발유·디젤·제트유) 시장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과연 덩치 큰 대형 석유회사들이 이 작은 시장에 뛰어들어서 뭘 얼마나 얻을진 의문이죠. 먹을 게 있긴 할까요. 이를 두고 배런스는 “마치 덩치 큰 사람(대형 석유회사)이 욕조(플라스틱 시장)에 뛰어들어 대포를 쏘는 것과 같다”고 평하는데요. 다른 경쟁자를 밖으로 밀어내고 시장을 잡아먹을 거란 뜻이 담겨있습니다. 아마도 비용 경쟁력에서 불리한 유럽과 아시아(중국 제외)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죠.

아무리 봐도 생산이 문제이건만

플라스틱 생산 과잉과 가격 급락은 석유화학 업계에만 큰일이 아닙니다. 환경 측면에서도 재앙이죠. 썩지 않는 쓰레기가 더 넘쳐나는 결과를 가져올 테니까요. 매립지에서 종이는 분해되는데 2~6주, 오렌지 껍질은 6개월이 걸리지만 플라스틱은 수백, 수천 년이 걸립니다.

재활용하면 된다고요? 분리수거 열심히 하고 있다고요? 그런데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 중 9%만 재활용되는 것 아시나요. 모든 종류의 플라스틱이 다 녹여서 새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죠. 또 플라스틱은 재활용하면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대 두 번까지만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결국 언젠가는 매립·소각될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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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플라스틱 공급이 넘치면 재활용 플라스틱의 설 자리는 좁아진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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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재활용하는 것보다 새 플라스틱을 만드는 게 훨씬 더 쉽고 저렴한데 재활용이 과연 크게 늘 수 있을까요.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만든 고밀도 폴리에틸렌 현물가격은 t당 943달러, 재활용한 고밀도 폴리에틸렌 가격은 1631달러입니다. 2019년만 해도 재활용 가격이 더 저렴했지만 이후 역전돼 가격 차이가 벌어지는 추세이죠. 새 플라스틱 가격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재활용은 점점 더 경제성 없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약속과 착한 소비에 기대는 데는 한계가 있죠.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플라스틱은 폐기물과 재활용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생산이 문제입니다. 생산을 어떻게 줄일지를 논의하긴커녕, 반대로 갈수록 공급이 더 넘쳐날 거라니 걱정스러운데요. 싸구려 플라스틱의 공습이 무섭습니다. By.딥다이브

플라스틱 산업이 지금 불황인 건 틀림없습니다. 다만 다운사이클이 얼마나 이어질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리죠. 여기에선 비관론에 초점 맞춰 살펴봤지만, 낙관론(중국 경제가 살아나면 조기에 회복될 수 있다)도 있다는 점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입니다. 30년 동안 4배로 늘어난 플라스틱 사용량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 늘어갈 겁니다. OECD는 2060년이면 지금의 3배가 될 거라고 내다봅니다.

-문제는 수요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플라스틱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시장 가격이 하락하고 공장 가동률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역대급 공급과잉은 앞으로 5년 이상 이어질 전망입니다.

-플라스틱 공급 확대를 주도하는 건 중국, 그리고 미국과 중동의 대형 석유회사입니다. 플라스틱이 석유의 미래라고 여기고 새로운 공장을 앞다퉈 건설 중인데요. 이들은 비용 경쟁력에서 앞서기 때문에 우리에겐 위험 요인입니다.

-값싼 플라스틱이 지금보다 더 넘쳐나게 된다니, 환경 측면에선 너무나 암울한 소식입니다. 과연 인류는 플라스틱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요.

*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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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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