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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이재용 "이렇게 사는 분들 처음 봐 머릿속 하얗다"…20년 몰래 쪽방촌 치료 병원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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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상 수상자 故선우경식 원장 전기에서 소개
한국일보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회장(당시 상무)이 2003년 6월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고 선우경식(오른쪽) 원장의 안내를 받아 목욕실·세탁실·이발실을 둘러보고 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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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쪽방촌의 극빈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에 20년 넘게 남몰래 후원을 이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회장의 선행이 '쪽방촌의 성자'로 불린 선우경식(1945~2008) 요셉의원 설립자의 삶을 정리한 신간 '의사 선우경식'(위즈덤하우스)에 소개되면서다. 1987년 문을 연 요셉의원은 순수 민간 후원으로 운영되는 노숙인 자선의료기관이다.

이 회장과 선우 전 원장의 인연은 '쪽방촌 실상에 눈물을 삼킨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 부분에 나와 있다. 2001년 귀국해 삼성전자 경영기획실에서 경영 수업을 받던 이재용 회장은 2003년 상무로 승진했다. 선우 원장은 같은 해 13회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았고 이후 이 회장이 요셉의원을 후원할 생각이 있어 방문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6월 27일 이 회장은 선우 원장의 안내로 병원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주방과 목욕실, 세탁실, 이발실을 살피며 병원 안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걸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선우 원장이 "쪽방촌이라는 데를 가보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회장은 "제가 사회 경험이 많지 않고 회사에 주로 있다 보니 가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했고 선우 원장을 따라 요셉의원 단골 환자의 집을 들렀다. 단칸방에는 술에 취해 잠든 남자와 얼마 전 맹장 수술을 받은 아주머니, 아이 둘이 있었다. 선우 원장 어깨 너머로 방 안을 살펴본 이 회장은 신음 소리를 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동행한 삼성 직원은 이 장면을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모습을 처음 본 이 회장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은 것'이라고 회고했다.

노숙인 밥짓 프로젝트 시작했지만 학부모 항의 시위로 무산

한국일보

2003년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이 쪽방촌의 극빈 환자를 치료하는 요셉의원을 방문했을 당시 모습. 위즈덤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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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자매관상선교수녀회가 운영하는 '영등포 공부방'까지 둘러본 이 회장은 굳은 얼굴로 "이렇게 사는 분들을 처음 본 터라 충격이 커서 머릿속이 하얗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비로 준비했으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된다"며 1,00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이후 다달이 월급의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이 회장은 두 번째 방문부터는 검소한 티셔츠 차림으로 왔다. 이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밥집을 지어달라는 선우 원장의 요청으로 이 회장은 몇 년 동안 '밥짓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삼성전자가 철도청 소유 공유지에 들어설 밥집 건물 설계도까지 준비했지만 "왜 밥집을 지어 노숙인을 끌어들이냐"고 반발한 영등포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삼성전자 본관을 찾아 시위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이런 선행은 이 회장의 당부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다가 이번에 책이 출간되며 알려졌다.

가톨릭대 의대를 나온 선우 원장은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1987년 8월 서울 신림동에 요셉의원을 개원했다. 평생 무료 진료를 해온 그는 급성 뇌경색과 위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다 2008년 6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새 책 '의사 선우경식'은 이충렬 작가가 각종 자료와 관련 인물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선우 원장에 관한 유일한 전기다. 이 책의 인세는 전액 요셉나눔재단법인 요셉의원에 기부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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