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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4 (일)

‘국가 석학’도 중국으로 떠난다… “정년 되니 연구할 곳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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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과학인상 받은 물리학자 이기명 올해로 정년 맞아

“남아 있고 싶어도 연구할 곳이 없어”

파격 대우 제시한 중국 연구소 가기로

2006년 ‘국가 석학’으로 선정된 고등과학원의 이기명(65) 부원장이 올해 8월 중국의 베이징 수리과학및응용연구소(BIMSA)로 간다. 이 부원장은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초끈이론’ 전문가로 국내 이론물리학의 대표 학자로 꼽힌다. 해당 분야 난제를 해결해 국내 학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기도 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이 부원장이 고등과학원을 그만두는 표면적 이유는 정년 때문. 하지만 지난해에도 과학기술 논문 색인(SCI)급을 포함해 5건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연구 활동은 여전히 현역이다. 그가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가는 데 또다른 이유가 있다. 이 부원장은 본지에 “한국에 남아 후학들과 같이 연구하고 싶어도, 연구할 곳이 마땅찮다”며 “중국이 많은 지원을 약속하니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등과학원의 박사후 연구원 한 명도 BIMSA로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과학계는 이 부원장의 중국행을 단지 과학자 한 명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기초과학에 무심한 한국, 인재를 나이·국적 제한 없이 유치하는 중국의 대비되는 모습을 우려하는 것이다.

경쟁국들은 기초과학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년이 없는 연구·교수직을 운영하며 연구자의 풀(pool)을 두껍게 하고, 학문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유지한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최재경 고등과학원 전 원장은 “이 부원장을 석학 교수로 모시고 싶었지만 인건비가 한정되어 있어 불가능했다”며 “중국 기관들은 5배 이상 많은 연구비를 제시하는 등 인재 영입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이 부원장이 자리를 옮기는 베이징 수리과학및응용연구소(BIMSA)만 봐도 고등과학원과 대비된다. 베이징시와 칭화대의 지원을 받아 수학과 물리에 집중한 연구 기관으로 고등과학원과 설립 취지는 비슷하다. BIMSA의 원장은 올해 75세인 싱퉁야우 미국 하버드대 교수다. 야우 교수는 필즈상 수상자로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등에서 연구 생활을 하며 1990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최근 다시 중국행을 택했다. 영국에 난민 자격으로 이주한 필즈상 수상자 코체르 비르카르, 일본에서 20여 년간 교수 생활을 한 대수기하학 분야 석학 아나톨리 키릴로프 등이 BIMSA로 자리를 옮겼다. 배경에는 자유로운 연구 환경과 충분한 지원을 약속하는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한국 정부도 우수 인재 영입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과학기술 인재의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2020년 5.46점에서 2023년 4.66점으로 악화됐다. 순위는 64국 중 36위에 그쳤다. 이 지표는 10점 만점으로 0점에 가까울수록 두뇌 유출이 국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인재 유출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별도의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는 상황이다.

과학계에서는 적극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지웅 경희대 교수는 “순수 과학 분야에 대한 국내 투자는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라며 “연구비뿐 아니라 정주 여건을 포함한 통합적인 지원, 해외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한 인재 활용 방안 등 다방면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김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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