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양당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의 첫 방송 토론이 거짓 주장과 인신공격으로 얼룩졌다.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고령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며 민주당엔 비상이 걸렸다.
27일(이하 현지시간) 미 CNN 방송 주최로 이뤄진 90분간의 토론에서 두 후보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악수 없이 무대에 오른 두 후보는 서로를 "이 사람(this man)", "이 남자(this guy)"로 지칭하며 토론을 이어 갔으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 때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는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 발언 때 자주 실소했다.
경제, 임신중지, 이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 등 사회자가 던지는 굵직한 질문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거짓 주장을 반복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그 때마다 "거짓말"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반박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대통령 재임 당시 자신에게 비판적인 CNN을 "가짜 뉴스"라고 폄훼했던 트럼프 선거캠프 쪽은 이번 토론을 주관한 CNN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해 왔고 CNN은 이를 의식한 듯 현장에서 거짓 주장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은 방청객 없이 진행됐고 언론 출입까지 막아 기자들이 현장 취재에 어려움을 겪었다.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토론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자들이 뉴욕의 고급 호텔에 머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세금 4배 인상을 원한다", 바이든 정부가 출생 후 영아 살해에 동의한다 등 명백한 거짓을 포함해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근거 없고 과장된 발언 수십 개를 내놨다.
그는 본인에 대한 형사 기소 뒤에 바이든 정부가 있다는 주장도 반복했다. 신문은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 시기 경제 평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회 보장 공약 등 관련해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과장된 몇몇 발언을 내놨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주제로 꼽히는 2021년 1월6일 미 의사당 폭동에 대해선 말을 돌리고 책임을 회피했으며 해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무고하다"고 시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의사당 폭동을 유발한 2020년 선거 사기 주장을 반복하지 않고 이번 대선 결과엔 승복할 것이냐는 질문에 "공정하고 합법적인 좋은 선거라면" 받아들이겠다며 단서를 달아 불안감을 키우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관련해 "여기서 유일한 유죄 판결을 받은 중범죄자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지적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사당 폭동 당시 폭도들을 "애국자"로 부르며 이를 막으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단정적으로 말하기를 꺼려 온 임신중지 문제 관련해선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를 "차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22년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에 대한 헌법적 보호(로 대 웨이드 판결)를 폐기한 뒤 미국에서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는 주가 크게 늘었고 주마다 관련 소송과 입법이 난무하며 혼란이 커졌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임신중지 허용을 원하는 가운데 9명으로 이뤄진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중 보수 성향으로 꼽히는 법관의 절반인 3명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해 임신중지 관련 사안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불리한 주제 중 하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임신중지권 관련 사안을 각 주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날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관련해 "이는 시민권을 주 정부가 결정하게 해 각 주마다 다른 규칙을 갖게 하자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신중지권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유죄 평결을 받은 혼외 성관계 입막음 돈 지불을 위해 사업 기록을 조작한 사건을 두고 "길고양이 수준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는 포르노 배우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며 해당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은 바이든 대통령이 고령 관련 우려를 해소하지 못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로 돌아갔다는 평가다. 이날 감기에 걸려 쉰 목소리로 토론에 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거나 더듬거리고 숫자를 혼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비교적 침착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련해 "나는 그(바이든 대통령)가 문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그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것"이라고 공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80대에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고 이미 80대에 접어든 현재 임기 중 일자리 창출, 한국 기업 삼성이 미국에 투자하도록 설득한 것 등 업적을 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보다 "3살" 어릴 뿐이지만 "능력은 훨씬 떨어진다"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련해 "나는 두 차례 인지 능력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해당 시험을 한 번이라도 치렀으면 좋겠다"고 응수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이미지가 강화된 이번 토론으로 인해 민주당 내부가 공황에 빠졌으며 후보 교체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해 온 한 민주당 전략가는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쇄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전략가는 "정당은 이기기 위해 존재한다. 트럼프와 함께 무대에 오른 그 사람(바이든)은 이길 수 없다"며 "트럼프 재집권에 대한 두려움이 바이든에 대한 비판을 억눌렀다. 이제 같은 두려움이 바이든이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를 부채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함께 토론을 지켜본 한 그룹의 하원 민주당원들이 이를 "재앙"으로 평가했으며 이들이 새 대선 후보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이 그룹의 한 구성원을 인용해 보도했다.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앤드루 양은 이날 토론 중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나는 2020년에 바이든 대통령과 7차례 토론을 벌였다. 2024년의 그는 다른 사람"이라며 "민주당은 너무 늦기 전에 다른 후보를 지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물러난다 해도 대체할 마땅한 후보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대체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후보 교체에 대한 이야기를 일축하며 "나는 결코 바이든 대통령에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며 오늘 밤 이후 그렇게 할 민주당원 또한 모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토론 뒤 기자들이 던진 후보 사퇴 요구에 대한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고 "거짓말쟁이와 토론하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 2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미 대선 후보 첫 TV 토론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격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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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미 대선 후보 첫 TV 토론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오른쪽)이 발언 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응시하고 있다. ⓒCNN·워싱턴포스트 영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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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미 대선 후보 첫 TV 토론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오른쪽) 발언 중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웃고 있다. ⓒCNN·워싱턴포스트 영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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