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이달 초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 65%가 대한민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국민 3명 중 2명이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공정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아온 것을 무색하게 하는 결과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최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두 가지 이슈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이슈는 배드민턴 관련 논쟁이다. 안세영 선수의 폭탄발언에서 시작된 선수와 협회 간 대립과 그 연장 선상에서 양분화된 전국민적 논쟁 상황을 보면 사회 구성원 간에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인식에 간극이 상당함을 발견하게 된다.
공정은 주관적 개념이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 공정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과거 경제·사회적 기반이 일천하고 양적 성장이 지상 과제였던 개발시대에는 조직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앞선다는 논리가 공정의 잣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 구성원은 이런 논리에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개인의 이익이 조직의 이익과 상충하는 환경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저개발국에서 첨단 산업국가로, 산아제한하던 나라에서 전 세계 최고의 저출생국으로,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만큼 압축적이고도 드라마틱한 경제 사회적 변화를 겪은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런 연유로 ‘공정의 기준’에 대한 사회 구성원 간 견해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정에 대한 합의 또한 쉽지 않다.
합의의 과정은 사회 구성원 간 활발한 의견 교환을 필요로 한다는 관점에서 이번 배드민턴 논쟁은 공정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물론 논쟁의 결과 수렴된 공정의 기준에 따라 제도와 시스템의 개혁이 뒤따른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둘째 이슈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노란봉투법이다. 노란봉투법의 촉매제가 된 대우조선 하청업체 파업은 공정성이 결여된 우리 노동시장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형성돼 있는 노동 여건 격차는 공정을 논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크다.
노동시장 불공정성에 대한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여 년에 걸쳐 쌓인 구조적 문제로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공정성 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목소리를 외면했고 그 결과 반작용으로 탄생한 것이 논쟁거리투성이인 노란봉투법이다. 기형적으로 불공정한 노동시장에서 기형적인 법이 탄생한 것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노동시장 개혁에 소극적인 정부는 물론이고 과도한 노동시장 격차를 방임 또는 조장한 원청기업, 대기업은 노란봉투법 탄생의 기여자들이다. 다른 나라의 정부와 기업이 노동시장 간 격차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제도적 또는 관행적으로 이를 억제하는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부당하다고 볼멘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노동시장 격차 완화를 위한 진심의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는 노란봉투법의 부당함만을 역설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불공정 노동시장을 개혁할 진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우리 사회에 배드민턴이나 노란봉투법 사례와 같은 불공정 이슈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 달성에 성공한 대한민국이 성숙하고 선진화한 사회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공정화’의 달성이다. 과연 대한민국이 ‘지금이 정점’(피크 코리아·Peak Korea)인지 여부는 이 마지막 관문을 넘어설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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