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5 (토)

지구 망치는 ‘나쁜 전기’ 싫은데…안 쓰려면 어떡해야 해? [지구, 뭐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헤럴드경제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본부 앞에서 기후솔루션과 소비자기후행동 주최로 열린 에너지 선택권 헌법소원청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어린이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에어컨을 틀고, 냉장고를 열고, 세탁기를 돌리고…

일상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망치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때문이다. 국내 전기의 약 60%는 여전히 석탄이나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생산된다. 이때 나오는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부추긴다.

헤럴드경제

인천 중구 인천대교에서 바라본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짙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인천=이상섭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를 쓸 수는 없는 걸까? 해외에서는 발전원에 따라전기를 마치 요금제처럼 골라 사용한다고 한다. 원하는 소비자는 재생에너지와 같이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 전기를 사면 된다.

국내에서도 고압의 전기를 쓰는 기업들에 한해 재생에너지를 사서 쓸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의 소비자 개인이 전기를 고를 방법이 없다. 이에 일부 소비자 및 시민단체들이 전기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소송을 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헤럴드경제

기후솔루션과 소비자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본부 앞에서 에너지 선택권 헌법소원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주택용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구매 선택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최근 전기 소비자 41명이 개인과 기업 간 에너지 선택권을 차별한다며 청구한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약 보름 만에 나온 결정이다.

헌법소원의 대상은 ‘신·재생 에너지 발전전력의 제3자간 전력거래계약에 관한 지침’이었다. 이 지침은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업체가 한국전력공사를 통하지 않고 전기사용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절차를 다룬다.

문제는 이 지침에서 재생에너지를 판매할수 있는 대상을 300㎾ 이상의 고압의 일반용전력 또는 산업용전력을 쓰는 소비자로 정해뒀다는 데 있다.

헤럴드경제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즉, 주택용전력을 쓰는 소비자 개개인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사고 싶어도 살 방법이 없는 셈이다. 전기를 고를 수 없어 소비자의 자기결정권과 생명권, 건강건, 환경권, 평등권을 침해 당했다는 게 소송 취지였다.

소송을 대리한 김건영 변호사는 “소비자가 전기를 선택적으로 구매함으로써 에너지 전환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청구인들의 적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고압 전기를 쓰는 기업 등을 위해 만들어진 지침으로 소비자들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헤럴드경제

한국전력공사 협력사에서 직원이 전기요금 청구서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전기를 골라 쓴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국내에서는 한전이 유일한 전기 판매자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을 ‘전기세’, 즉 세금처럼 여기는 소비자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공고했던 전력 판매 독점 체제에도 금이 가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압박이 커지면서 ‘RE100’에 가입하는 등 기업들이 앞다퉈 재생에너지를 찾기 시작해서다. 재생에너지 수요가 생기면서 재생에너지를 사고 팔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 셈이다.

김건영 변호사는 “RE100으로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요구하자 관련 지침이 생겼듯이 가정에서 재생에너지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 이를 위한 제도가 마련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헤럴드경제

[기후솔루션]


전기를 선택할 권리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은 적지 않다. 기후솔루션이 지난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더 납부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이 47.7%로 조사됐다. 서울,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경기, 제주 거주 20~59세 2000명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다.

추가 납부 의향이 있는 응답자 중 42.5%는 전기요금을 10% 가량 더 낼 수 있다고 응답했다. 희망하는 인상 금액은 전기요금의 5%(30.5%), 20%(12.7%), 15%(10.1%) 순이었다.

해외에는 개인이 재생에너지를 선택해 구매하는 제도가 마련된 경우가 많다. 전력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대규모로 사들인 전기를 재생에너지 전기요금제를 선택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식이다. 독일의 리히트블릭(LichtBlick), 영국의 이온(E.ON) 등이 있다.

일본에서도 아스트맥스에너지(ASTMAX ENERGY)라는 전력기업에서 ㎾h(킬로와트시) 당 약 7.5원(0.8엔)을 추가로 내면 100%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헤럴드경제

지난 3월 평균 연령 63세, 최고 연령 92세의 노인 123명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정부의 미흡한 기후위기 대응으로 노년층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취지의 진정을 냈다. [기후솔루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장 기본권으로 인정 받지는 못했지만, 가정의 소비자들이 전기를 선택할 길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심각성이 환기되고 고민할 틈이 생긴다.

앞서 지난 3월 노인 123명이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미흡해 인권을 위협받는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던 진정은 각하됐다. 그러나 인권위는 진정인들과 만남을 갖고, 기존 조사를 돌아보는 등 정책 개선 권고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건영 변호사는 “기후소송은 인식 변화를 끌어내는 게 가장 큰 목표”라며 “소송이 진행되면 원고들은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정부 기관을 피고이자 당사자로 소환해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기후소송에서는 유리한 결과를 받는 것 만큼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ddressh@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