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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성심당 빼면 노잼 도시' 대전이 달라졌다? "진짜 '유잼 도시' 되려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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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브랜드 전국 1위, 축제에 구름 인파
'노잼 도시'의 대명사 대전, 정말 달라졌나
'노잼=대전' 공식 시작은 2017년 인터넷 밈
성심당 등 유명한 곳만 '찍고' 떠나는 여행
힙하고 핫한 곳만 찾는 도시 소비자들 많아
울산·광주도 '재미있는 도시' 서울 따라하기
"도시민들, 나만의 도시 즐기는 법 찾아야"
한국일보

성심당의 튀김소보로와 판타롱부추빵.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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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유명 빵집인 '성심당' 외에는 들를 곳이 없고 특별한 관광지도 부족한 따분한 도시의 대명사 대전. 그런데 최근 '노잼 도시' 대전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정황이 눈에 띄고 있다. 대전은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발표하는 광역자치단체 브랜드 평판에서 서울을 제치고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지역 축제도 화제다. 지난달 28, 29일 개최된 '2024 대전 빵축제'에는 14만 명의 구름 인파가 몰렸다. 8월 열렸던 '2024 대전 0시 축제'에도 약 200만 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대전은 이제 정말 재미난 도시로 거듭난 것일까. 아니면 '성심당 효과'와 시 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일시적으로 도시를 재미 있어 보이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해 11월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를 발간한 주혜진(51)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3일 화상으로 만나 이에 대해 물었다. 주 연구위원은 "대전뿐 아니라 국내 여러 도시가 서울에서 '재미의 기준'을 찾고 있는 이상 그 도시만의 진정한 재미를 발굴하기 어렵다"며 도시를 즐기는 방식 자체를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인터넷 '밈'이 된 '대전=노잼'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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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대전에 왔을 경우를 상정해 짠 알고리즘. 결국 지인과 지역 유명 빵집인 '성심당'에 들른다는 결론으로 끝나는 이 알고리즘은 대전이 '노잼도시'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대전이 노잼 도시로 불리기 시작한 건 2017년 즈음이다. '지인이 노잼의 도시 대전에 온다! 어쩌면 좋아!!!'라는 제목의 그림이 발단이었다. 지인이 대전에 놀러왔을 경우를 상정해 여러 경로와 일정을 고민하다, 결국 지역 유명 빵집인 성심당으로 이끌고 돌려보낸다는 결론으로 끝나는 알고리즘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것.

주 연구위원은 이 알고리즘의 등장 후 대전이 노잼 도시로 널리 각인된 현상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2015년부터 2021년 8월까지 '노잼 도시' 키워드를 포함한 블로그 포스트를 대상으로 텍스트 마이닝(텍스트를 분석하고 구조화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기법)을 진행했다. 그 결과, '대전 방문의 해'였던 2019년을 기점으로 블로거들이 '노잼 도시'와 대전을 함께 언급하기 시작했고 그 무게감도 점차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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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저서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를 들고 있다.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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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제 대전이 '노잼 도시'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성심당, 소제동 카페거리 등 잘 알려진 곳만 '찍고' 돌아오는 대전 방문이 하나의 놀이와 의례가 됐다고 분석했다. 주 연구위원은 "'노잼이면서 감히 놀러오라고?'라는 질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자들의 유머와 조롱에 기반한 놀이 속성을 자극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도 이런 SNS 특유 속성에 기반한 '노잼 도시 확인 놀이'는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을 닮고 싶은 지방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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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경.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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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같은 변화가 궁극적으로 대전을 재미있는 도시로 탈바꿈시켜주는 것은 아니라는 게 주 연구위원의 생각이다. 재미의 기준 자체가 '핫하고 힙한' 장소가 많은 서울에 맞춰져 있고,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재미로 치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뿐만 아니라 인구 규모가 비슷한 광주, 울산 등도 노잼 도시로 거론되고 있는데, 이 같은 도시들 역시 서울을 모방하려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서울이 '원본', 다른 도시들은 '복사본'이 된 것.

주 연구위원은 "많은 도시들이 원본을 향한 '우상향 추격전'을 하는 중"이라며 "닮고 싶은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좇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상업용 철도를 리모델링한 '하이라인'을 서울역 근처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한 '서울로 7017'이 추격하고, 서울 익선동 카페 거리를 대전 소제동이 뒤쫓는 식으로 '복사본의 원본 따라하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주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도시는 '소비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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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관광공사는 지난달 28일부터 이틀간 대전 동구 소제동에서 열린 '2024 대전 빵축제'에 관람객 14만 명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사진은 빵 축제 현장 모습. 대전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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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같은 모방과 재미 추구는 도시를 느끼는 감수성을 납작하게 만든다고 주 연구위원은 분석한다. 도시는 사람과 공간과 정서가 버무려진 복합체인데 '재미 있는 도시'라는 잘 포장된 소비재로 전락하고, 이런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결국 소비자로서 적은 비용으로 큰 유희를 느끼려 '가성비'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전은 성심당 등 유명 장소만 찍고 돌아오면 그만인 도시에 머물게 된다.

주 연구위원은 도시에 살고,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보다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남이 잘 만들어 놓은 재미를 구매하는 수동적 삶이 아니라, 내가 진짜 뭘 원하고 뭘 느끼고 싶은 사람인지를 탐구하고 계발해야 한다"면서 "나의 재미를 나의 도시에서 찾는 것이 모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방정부 등이 도시계획을 정하거나 도시를 브랜딩할 때 실제 시민의 삶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시민들이 참여하게 하고, 사람들의 삶을 더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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