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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유효상 칼럼] 왜 세계적으로 저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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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최근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을 보면 10년 이상 신어서 너덜너덜해진 운동화를 신고 있거나,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의자에 앉아 있거나, 올인원 바디 제품으로 샤워를 하거나, 오래 써서 케이스가 깨진 화장품을 버리지 않고 쓰는 등의 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저소비를 실천하거나 장려하는 것이다. 가급적 기존 상품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고, 리커머스(중고거래)를 최대한 활성화하고, 목적이 비슷하면 새로 구매하지 말고 기존 상품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저소비 코어(Underconsumption Core)'라 부르고 있다. 저소비를 뜻하는 'Underconsumption'과 일상적이고 편안함을 의미하는 'Normcore'의 합성 신조어인 저소비 코어는, 젠지(Gen-Z)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Z세대들은 검소함과 미니멀리즘을 옹호하며 오래된 가구, 빈티지 의류 등을 사진으로 찍어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면서, 인플루언서들이 주도하는 노골적인 소비주의 마케팅을 거부하는 이른바 '디인플루언싱(Deinfluencing)'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거 과소비를 자랑하는 일명 '플렉스' 문화가 이젠 소비를 절제하는 것에서 멋을 느끼는 젊은 층이 늘고 있는 것이다.

쏟아지는 인플루언서들의 광고, 상품 추천, 사치성 '하울haul' 영상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단순 절약과는 다른 개념이다. 충동적이고 과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문화에 지친 젊은 소비자들의 저항이자 물건에 대한 필요와 가치를 망각한 채 그저 '소비'만을 추구한 것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이다. 또한 기존 절약 정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비를 줄이는 행위에만 그치지 않고, 사진이나 영상 등 콘텐츠를 제작해 저소비 코어를 '널리 알리고 자랑하는 것'에 있다. 적은 지출을 위한 노력을 궁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불필요하거나 충동적인 과소비를 지양하여 고물가와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지혜롭고 적절한 대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남들이 쉽게 사지 못하는 아이템에 대한 소비와 필요 이상의 과소비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시점에 등장한 저소비 코어는, 이상적인 삶에 대한 가치관 변화라는 주장도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화려한 명품과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 등 물질만으로는 더 이상 '꿈꾸는 삶'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빈자리를 지구환경 등 '지속가능성'이라는 의미있는 가치로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한계와 과소비를 조장하는 소셜미디어 제품 홍보에 대한 반감도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름 필수 뷰티템 추천', '지금 사지 않으면 안 되는 패션 아이템' 등 각종 소셜미디어, 영상매체 피드를 보다 보면 관련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빠른 시간에 쉽게 현혹될 아이템들을 보여주며 당장 구매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심리적 압박감을 준다. 어느새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된다. 이러한 소비 패턴에 지친 영미권 Z세대를 중심으로 저소비 코어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핀테크 회사인 크레디트 카르마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사용자 중 청년층의 88%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흥미를 잃었으며, 그 이유는 과소비를 촉진하는 제품 홍보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컬럼비아대 MBA 교수인 브렛하우스는 주기적으로 큰 경기 침체가 있을 때마다 비슷한 소비 트렌드가 나타났다고 말하며, 이번 사이클은 포스트 코로나로 시작된 보복 소비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급격한 물가 상승,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경제적 지출 여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2010년대 초반부터 10년 가까이 청년층의 주요 소비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던 '욜로(YOLO)'가 막을 내리고, 전 세계적으로 '요노(YONO)'가 최근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욜로는 '단 한 번뿐인 인생'(You Only Live Once)'이라는 뜻으로 미래나 타인을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과도한 지출도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 소비 행태를 말한다. 그에 비해 요노는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You Only Need One)'를 모토로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서,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한의 만족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저소비 트렌드는 미국과 유럽의 Z세대를 '듀프(dupe)'족으로 만들기도 했다. 듀프는 복제품을 뜻하는 'duplication'의 줄임말로, 인기가 있는 유명 브랜드 제품을 따라 만든 '저렴한' 제품을 의미한다. 요즘 Z세대는 이런 듀프 소비를 숨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놓고 자랑한다. 예를 들어, 아마존에서 '룰루레몬 듀프'로 검색해서, 100달러가 넘는 룰루레몬 레깅스와 기능과 디자인이 비슷하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한 CRZ요가와 같은 브랜드를 찾는다. 그리고 이렇게 구매한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자랑스럽게 올린다. '패션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굳이 비싼 브랜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럭셔리 주식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 전 CNBC는 LVMH, 디올, 케링 등 유럽 럭셔리 회사의 주가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도했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은 룰루레몬이 미국 Z세대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실제로 지난 14분기 연속 15% 이상 매출이 증가했던 룰루레몬은 지난 3월부터 매출이 급감하면서, 1년 전에 비해 주가가 50%가량 하락하기도 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dupe'로 검색한 건수는 미국에선 최근 13개월, 영국에선 6개월 만에 100% 증가했다. 또한 틱톡에는 향수부터 가구까지, 각종 카피제품 구매를 자랑하는 영상이 무수히 많다. 조회 수가 무려 63억 회에 달한다.

듀프는 이른바 '짝퉁'이라 불리는 위조품과는 다르다. 가짜 로고를 새겨 상표권을 침해하거나 특허를 침해하는 위조품은 불법이지만, 그냥 디자인이나 주요 특징을 비슷하게 따라 하기만 한 복제품은 대체로 법적으로는 별문제가 없다. 뉴욕대 로스쿨 크리스토퍼 스프리그먼 교수는 "복제품 문화는 오랫동안 매우 활발했고, 일반적으로는 불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복제품을 불편해하는 브랜드 회사도 많지만, 소비층이 다르기 때문에 복제품이 늘어난다고 해서 오리지널 제품 판매에 커다란 영향은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카피제품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달라진 건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인기 브랜드 제품을 복제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Z세대는 복제품을 샀다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기꺼이 공개한다는 점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와이펄스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MZ 세대들은 듀프 구입에 대해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이유는 큰돈 들이지 않고 '럭셔리'한 느낌을 준다(69%)는 것이다. 특히 60%는 오리지널 제품을 살 여유가 있어도 여전히 복제품을 선택한다고 했다. 또한 복제품을 찾는 일이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1%). 한마디로 저렴한 복제품을 찾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쇼핑이 일종의 게임이 된 것이다.

노스웨스턴대학의 자클린 밥 교수는 "복제품을 '명예의 휘장'으로 여기기 때문에 일부러 구매한다"고 해석했다. 또한 찰스 린드시 버팔로대 교수는 "Z세대는 얼마나 많은 돈을 절약했는지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 구매하는 제품이 유명 브랜드인지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과연 Z세대는 더 나이가 들고 경제력이 생긴 뒤에도 지금처럼 복제품에 열광하고 저소비 코어를 이어 갈까. 아니면 나이가 들고 돈이 많아지면 선택이 달라질까. 미국 시장조사기관 모닝컨설트는 '듀프 문화가 젊은 소비자들의 습관에 영구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부머(Boomer)와는 달리 Z세대에게 소비는 이미 놀이이자 지혜의 자랑거리다.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지구를 지키는데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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