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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7 (금)

韓 '트럼프 폭풍'에 무방비 노출 … 기업·국회도 총력 외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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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신년기획-위기, 대변혁 기회로 ◆

매일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사상 첫 미·북정상회담 환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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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세계 각국이 비상 대응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 외교는 손발이 묶여버린 상태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정국의 파장이 정치·경제는 물론 외교안보 분야까지 밀어닥친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자 그가 집권 1기 당시 비핵화 협상 실패 영향으로 2기에는 핵 동결·군축 대화로 전환할 가능성이 대두됐다. 진의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만약 기조 전환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한반도 정세에 메가톤급 충격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과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한반도 문제를 후순위로 돌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미북 대화 속도전에 나선다면 리더십 공백 상태인 한국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반영되긴 힘들 것이란 우려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22일 전직 고위 외교관료와 외교통 정치인은 매일경제 지상좌담에서 이처럼 엄중한 시기에 외교 공백이 길어져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이들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을 한국의 회복 탄력성을 대외적으로 증명할 기회로 활용하고, 진영 이익이 아닌 '국익'을 지켜내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의 판이 바뀌는 상황에서 상당 기간 한미 정상회담 개최가 힘든 점을 먼저 염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말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 북한의 전략핵무기 능력만 덜어내는 '스몰 딜'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지만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안보 불안을 미국에 전달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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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장관은 초당적 관점에서 국익을 우선해 외교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외교를 펼치면서 한국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한미 간 고위급 의사소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외교를 이끌었던 윤 전 장관은 "당시 (황교안)권한대행 체제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세 차례 통화가 이뤄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역별 공관장 회의 △방한 초청외교 △초당적 의원외교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외교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 전 외교부 1차관은 탄핵 정국에서는 사실상 의미 있는 고위급 외교가 힘들 것이라며 윤 전 장관과 다소 결이 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는 2016년 탄핵 정국의 결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조 전 차관은 "당분간 큰 외교는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부 직원들을 향해 "(계엄과 탄핵 등 현재 상황을)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며 "우리가 위기를 이렇게 잘 극복해내고 있다는 점을 해외에 잘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인도의 고교 교과서에 한국의 평화적 촛불시위가 실려 외교적으로 전화위복이 됐던 사례도 소개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홍익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익에 기반한 초당적·민관협력 대미 외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 전 원내대표는 "대미정책에 관해 여야가 초당적으로 '서울 컨센서스'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경험과 친분이 있는 문재인 정부 인사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 또는 워싱턴 조야의 핵심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기업인들로부터도 외교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 전 원내대표는 "미국 외교 정책은 대통령과 국무부도 중요하지만, 의회의 권한과 역할도 크다"면서 "국회와 주요 정당이 입장을 조율해 적극적인 의원 외교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초로 미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민주당·뉴저지주) 등 한인 정치인의 가교 역할도 기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료 조직이나 싱크탱크보다 '사적' 관계나 거래상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점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달라진 대미외교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도 한미 간 정상외교 공백을 대신해 한국 경제단체나 대미 직접투자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 혹은 측근들과 접촉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미국 경제에 공헌하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 활동을 적극 홍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관심을 표시한 조선 및 군함 건조·수리 등의 분야에서 한국이 이바지하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다 한국의 의견을 꾸준히 전달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윤 전 장관은 "다양한 채널과 수준에서 트럼프 대통령 측에 우리 입장을 선제적으로 전달하고 반영해 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조 전 차관도 향후 대미외교에서 조급함은 오히려 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요한 '거래'는 탄핵 정국 뒤에 해도 된다"면서 "한미관계는 공백기를 극복하고 좋은 관계로 재진입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김성훈 기자 /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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