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사진을 들고 그 자리에서 또 사진을 찍었다.
찍힌 시간과 그 위로 흘러가는 시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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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 신혼여행길 내장사에 들른 부부가 눈 쌓인 대웅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산천은 의구했고 사찰은 변했고 손에 들린 세월은 가벼웠다. 전북 정읍 내장사, 1976 / 2012. ⓒ허영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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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렇게 찍은 연인들의 사진들을 어렵게 구해 들고 사진이 찍힌 자리를 찾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사진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든 카메라로 사진과 주변의 현재를 찍었다. 모든 것들이 그대로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대로인 것들과 달라진 것들 사이에서 과거의 한순간이 손에 들려 있었다. 어떤 사진에서는 30년 전 연인들 옆으로 지금의 연인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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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에 30년 전의 연인들과 지금의 연인들이 있다. 부산 해운대, 1982 /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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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서는 세월의 간극이 사라지고 여러 시점의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시간은 압축되고 공간과 사건은 편집된다. 말도 지식도 일정 시간 익힌 뒤에 드러나는 것의 무게는 다르다. 사진도 시간이 쌓이면 다른 말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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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등산, 1983 /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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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고 찍은 사진에는 타인의 시간이 보였다. 내 시간을 감당하느라 쳐다볼 겨를 없던 동안 흘러가 버린 타인의 세월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은 가져가버린 것들에 대한 보답으로 회한과 탄식이라는 감정의 울림을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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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함께 찍힌 저들은 어떤 시간 어느 자리에 있을까, 궁금했다. 강릉 오죽헌, 1984 /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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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사찰의 대웅전은 화재로 소실된 뒤 다시 지어졌다. 다시는 똑같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되어버린다고 하지만, 그것이 그리 한탄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손에 잡히는 사진 위로도 시간이 지나가고 기억이 덧씌워지고 새로운 액자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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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 1987 /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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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바깥은 현재이기도 하지만, 현재 시점에 떠올리는 그때의 기억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사람의 연대기에 집중하지 않고 독립된 개체로서 과거의 어느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한 걸음 물러나 지난 시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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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자연농원, 1992 / 에버랜드,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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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사실도 사진이 불러오는 기억도 시간의 강 위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진다. 사진의 시간은 사진 안에도 있고 사진 밖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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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대, 1977 /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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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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