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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슈퍼마켓에서 정전으로 불이 꺼진 가운데 한 직원이 손전등 불빛에 의존해 고객을 돕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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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으로 수천만명이 피해를 입었다. 다음날 전력은 대부분 복구됐지만, 갑작스러운 정전이 일어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스페인 국영 철도회사 렌페(Renfe)는 이날 낮 12시30분께 “국가 전역의 전력망이 차단됐다”며 모든 역에서 열차가 멈춰 출발이 중단됐다고 공지했다. 이 시간을 기점으로 스페인의 공항과 지하철, 기차 운영이 모두 멈춰섰고, 현금인출기(ATM)와 전화, 인터넷 연결도 모두 끊겼다. 정전으로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스페인 전력 수요는 2만7500MW(메가와트)에서 1만5000MW로 뚝 떨어졌다. 전력 수급 균형도 무너졌다. 스페인보다 1시간 빠른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과 북부, 남부 지역도 오전 11시30분부터 정전이 시작됐고, 프랑스 남부 지역 일부도 피해를 입었다.
갑자기 발생한 정전으로 곳곳이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은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해 지하 터널에서 밖으로 나오고, 신호등이 꺼져 차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스페인 정부는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 도로를 중심으로 경찰 3만여명을 배치해 질서 유지에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갇히거나 열차 안에서 고립된 시민들도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에선 열차 100대가 고립돼 승객 3만5000명이 구조됐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물과 식료품, 생필품을 비축해두려는 사람들로 마트는 장사진을 이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부는 이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긴급회의를 열고 복구 작업에 나섰지만 속도는 더뎠다. 스페인 전력망 관리 업체 레드엘렉트리카는 정전이 발생한 지 18시간이 지난 29일 아침 6시 기준 전기 공급 복구율이 99%에 다다랐다고 발표했다. 포르투갈도 28일 밤부터 전력 공급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돼 650만가구 중 620만가구가 다시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보도했다.
유럽 남서쪽 이베리아반도 전체에 발생한 대규모 정전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각국 전력 운영사마다 나오는 입장도 차이가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력망은 초고압 송전선으로 서로 연결돼 있는데, 스페인 레드엘렉트리카는 28일 이번 정전 원인으로 이유 불명의 ‘전력 진동’을 들었다. 스페인-프랑스의 송전선 연결망에 문제가 생기면서 스페인 전력망이 유럽의 전력 시스템과 연결이 끊겼고, 결국 스페인 전력망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에 앞장서고 있는 스페인은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60%를 넘어섰는데, 재생에너지 발전에 적합한 전력망 시스템이 부족해 이번 사태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스페인에서 전력을 수입하는 포르투갈도 연쇄적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갈의 국가 전력망 운영 기관인 알이엔(REN)은 앞서 스페인 내륙의 극심한 온도 변화가 일으킨 대기 현상으로 고압선에 비정상적 진동이 생겨, 이것이 전력 시스템 장애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이후 해당 기관 관계자는 이런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일각에선 전력 시설에 사이버 공격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그러나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현재까지 사이버 공격의 징후는 없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유럽 사상 가장 큰 규모 정전으로 기록될 수 있다. 2021년엔 프랑스 남부에서 산불이 발생해 스페인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선로의 전력 공급이 중단된 사례가 있지만, 1시간 이내에 전력 공급이 복구됐다. 또 2003년 이탈리아와 스위스 일부 지역에서 최대 12시간가량 전기가 끊겨 5600만명이 피해를 당한 바 있다. 그러나 인구 6000만명 규모인 스페인·포르투갈의 정전 피해 규모는 이보다 클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큰 정전은 2012년 인도에서 발생해 7억명이 피해를 봤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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