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8 (수)

이슈 뮤지컬과 오페라

나이 초월한 이혜영의 연기… 21세기에 더욱 빛나는 연극 '헤다 가블러' [종합]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기자간담회
배우 이혜영, 2012년 초연 이후 13년 만 다시 합류
"연극은 순수와 노련함이 만나 완성되는 것"
'원조 헤다'의 자부심과 자신감


한국일보

배우 이혜영이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억압과 한계 속에서 한 여성이 자유를 갈망하는 심리극인 '헤다 가블러'에서 배우 이혜영은 헤다 가블러 그 자체로 존재한다.

1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는 '헤다 가블러'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행사에는 박정희 연출과 이혜영 배우가 참석했다. 2012년 이후 13년 만에 다시 돌아온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에는 배우 이혜영이 선다. 초연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혜영의 귀환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혜영은 계급주의가 무너져 가는 숨 막히는 부르주아 사회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과 그 자유의지의 추락으로 파괴적 결말을 맞는 헤다의 절망감을 열정적인 연기로 그려내면서 평단과 객석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특히 1988년 '사의찬미' 윤심덕 역(제25회), 1995년 '문제적 인간 연산' 장녹수 역(제32회)에 이어 2012년 '헤다 가블러'의 헤다 가블러 역을 통해 제49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세 번째 수상하면서 이혜영은 최고 권위의 동아연극상에 신구 박정자와 함께 최다 수상자에 오르며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헤다 가블러'는 헨리크 입센이 원작으로,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다룬 작품이다. 극중 주인공인 헤다는 입센의 작품 중 가장 극적인 역할 중 하나이며, 여성 햄릿이라고 비유되기도 한다.

한국일보

주인공 헤다 역을 맡은 배우 이혜영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다 가블러'의 연출은 박정희 현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맡는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 연극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여성 연출가이자 실험적 연출가로 평가받고 있는 박정희 예술감독은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과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더해 자신만의 독특한 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혜영을 중심으로 고수희 송인성 김은우 박은호가 무대에 선다.

현재 이혜영은 영화 '파과'로 국내외 관객들을 만났다. 특히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부문을 통해 해외 유수 매체들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연출가 "이혜영은 연출의 상상력 뛰어넘는 배우"


이날 이혜영은 13년 만에 박정희 연출가와 만난 소회에 대해 "연출가보다 창조가다. 초연에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완성을 하기 위해 만난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해체하고 새롭게 만들었다. 만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박정희 연출가는 "프로덕션을 진행하면서 연출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배우들이 많지 않다. 이혜영은 바로 그런 배우다. 장면을 삭제하고 연기로 풀어낸다. 그 장면을 보면서 감탄했다. 독보적인 배우이자 '넘사벽'이다. 너무나 지성적으로 성숙하고 연출이나 창작진의 상상을 뛰어넘는 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블러 장군의 딸로 기억되는 헤다와 이혜영 역시 유명 감독을 아버지로 뒀다. 다만 이혜영은 공통점에 대해 선을 그으며 "오롯이 무대 위의 헤다로만 기억했다. 저는 그녀를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사람으로 생각했다"라고 짚었다.

그렇다면 이혜영에게 '헤다 가블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에 이혜영은 초연을 떠올리며 "헤다는 유니크하고 내가 있기에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했다.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갖고 있다. 그때도 그런 착각으로 상도 받았다. 이번에 다시 해보자고 했을 때 부족한 것이 생각났다. 완성을 위해 도전하자. 착각을 방해하려는 요소는 아무 것도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라고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연기를 할 때 헤다와 동일시는 하지 않았다. 이혜영은 "연극이 좋은 이유는 일회성이다. 연극의 완성은 관객들 덕분이다. 매번 올 때마다 지겹도록 연습했다. 매번 새로운 관객들과 만나 창조한다. 그때 비로소 순수함과 노련함이 무대에서 완성된다. 전 그래서 무대를 좋아한다"라며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일보

배우 이혜영이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타 극단 '헤다 가블러'와의 비교 NO"


박정희 연출가는 가장 화제가 됐던 결말에 대해 "헤다가 파괴와 창조의 신 디오니소스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것은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해석으로 결말을 맺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온전히 박정희 연출가의 아이디어다.

동시기에 LG아트센터에서도 '헤다 가블러'가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 7일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에는 배우 이영애가 헤다를 맡았다. 이 부분이 화두에 오르자 이혜영은 "배우가 다르고 프로덕션이 다르다. 비교는 불가하다. 또 지금 제 모습은 있는 그대로다. 그러나 '헤다 가블러'라는 공연을 관객들과 만날 때 결코 제 나이는 문제되지 않는다"라면서 새신부 역할을 소화하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을 전했다.

그런가 하면 앞서 윤상화 배우의 건강 이상으로 개막이 연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떠올린 이혜영은 "너무 힘들었고 죄의식이 들면서 고통스러웠다. 지금 개막을 한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운 배우를 찾아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힘들었다. 공연을 해야 할까. 우리 모두 패잔병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면서 울컥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월 '파과' 홍보와 연극 연습 일정이 맞물리며 체력적 부침도 있었을 터다. 이에 이혜영은 "링거도 맞았다. 계속 그러면서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공연을 봐달라"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헤다 가블러'는 지난 8일부터 내달 1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어진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