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지역 내 다른 부지에 지어라”
장애 학부모 “첫 번째 장소 안되면 이후 다른 곳에 짓기는 더 어려워”
“첫 번째 부지에서 쫓겨난 특수학교가 두 번째 부지에서 세워진 적이 없습니다. 동진학교는 그렇게 여덟 번을 쫓겨났습니다.”
지난 21일 오전 10시 서울 성동구 경일고에서 지체장애인 특수학교 ‘성진학교’ 설립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설립 계획을 설명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부대시설에 대한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설명회가 시작되자, 참석자 230여 명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고성을 지르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 주민은 내내 ‘주민 의견 무시하는 교육행정 규탄한다’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성진학교는 서울 성동구에 2029년 개교 예정인 지체장애인 특수학교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동북권에 지체장애 특수학교가 정민학교(노원구) 한 곳밖에 없어 학생들이 멀리 통학을 하자 성동구에 추가로 짓기로 했다. 부지는 학생 수 감소로 폐교가 결정된 성수공고 자리로 2023년에 정해졌다.
그런데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성동구 다른 곳에 지으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 예정 부지 바로 근처가 ‘성수 전략 정비구역 1~4지구’로 10여 년 안에 1만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부지를 비워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송파구로 이전한 덕수고 자리나 향후 통폐합 학교가 나오면 그곳을 이용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성진학교를 다른 곳에 짓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덕수고 부지는 이미 2021년 서울미래교육파크와 온라인 학교 등으로 활용처가 정해졌고, 현재 일부는 운영 중이다.
장애 학생 학부모들은 “자기 집 근처엔 특수학교를 짓지 말라는 전형적인 님비 현상”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이날 설명회에서 한 장애 학생 학부모는 “집 근처에 특수학교가 없어서 3~4시간 걸리는 거리를 매일 통학하고 있다”면서 “재개발이 언제 끝날지, 1만 가구 중 고등학생이 몇 명이 될지도 모르는 만큼 당장 학교 다니기 어려운 장애 학생들을 먼저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특수학교는 설립을 추진할 때마다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해온 지적장애인 특수학교 ‘동진학교’는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부지가 여덟 차례나 바뀌었다. 최근에야 아홉 번째 후보였던 중랑구 신내동의 그린벨트 지역으로 결정돼 다음 달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개교는 2027년 예정으로, 당초 계획에서 10년 6개월이나 늦어진 것이다. 2020년 3월 문을 연 강서구 발달장애인 특수학교 ‘서진학교’는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모습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며 설립 예고 6년여 만에 개교할 수 있었다.
서울 지역 특수교육 대상자는 2019년 1만2779명에서 작년 1만4546명으로 늘었지만, 새로 개교한 특수학교는 서진학교 이후 없다. 특히 지체장애인 특수학교는 25개 자치구 중 7곳에만 있어 학생들이 원거리 통학을 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특수학교를 짓고 남는 부지에는 공공도서관이나 체육실 등을 짓는 방안으로 주민들을 최대한 설득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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