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오리지널 ‘파인: 촌뜨기들’
“관석은 갈수록 커지는 욕망을 상징”
“죽은 줄 알았지만…살아도 결국 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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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시위를 떠난 찰진 사투리들이 사정없이 공기를 가른다. 갓 건져낸 물고기들 마냥 연기 하나하나가 펄떡펄떡 뛴다. 딱히 넓지도 않은 공간에 적지도 않은 인간 군상들이 빼곡하게 모여서는, 별것 아닌 듯 무시무시한 연기들을 쏟아낸다. 이렇듯 주연급 배우들부터 조연, 단역 나눌 것 없이 하나 같이 기세 좋게 신을 누빈다. “완전 무협지죠, 저는 외팔이고요”. 베테랑 연기자에게도 분명 쉬운 현장은 아니었을 테다.
“다른 배우들은 물에 들어가고, 액션도 하고, 사투리도 쓰지만, 관석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제 눈빛과 수 계산을 따라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눈으로 듣는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는데, 제 나름대로는 어려운 연기였어요”.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배우 류승룡은 연기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최종화가 공개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이하 파인)에서 주인공 ‘오관석’으로 분했다. ‘파인’은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들을 건지기 위해 모여든 촌뜨기들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 그 중 ‘관석’은 보물을 찾으러 간 이들의 리더이자, 돈 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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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은 “관석은 맨 처음에는 좀도둑이었다가 점차 욕망이 복리로 쌓이는 캐릭터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욕망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인물”이라면서 “배우지는 못했어도 늘 깨끗이 씻고, 정리 정돈을 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면서 자기 관리와 자기 객관화할 줄 아는 것이 관석의 능력”이라고 짚었다.
점점 더 커지는 욕망의 끝은 결국 파멸이다. 관석은 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지만, 결국 그 무엇도 손에 쥐지 못한다. 신안 앞바다에 모인 ‘촌뜨기들’ 모두가 마찬가지다. 인간 욕망의 허무함과 잡히지 않은 욕망. 드라마를 지배하는 짙은 주제 의식은 류승룡이 ‘파인’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대본을 보며 대학생 당시 봤던 영화 ‘파고(1996)’가 떠올랐단다.
류승룡은 “촬영 시작 전 고사 때 윤태호 작가를 만나 ‘파고’ 이야기를 했더니 작가님의 레퍼런스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면서 “속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욕망을 꺼내려는 인간들과, 아무것도 손에 못 쥐고 다 끝이 나는, 욕망의 허무함이라는 의도가 가장 매료된 지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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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들은 서툴고 순진하다. 돈에 눈이 멀어 앞뒤 가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큰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관석도 그렇다. 그의 바람은 그저 먹고 살 만큼의 여유, 조금 더 큰 집에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전부다. 평범한 가장의 바람을 품은 관석은 그래서인지 악인임에도 마냥 악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류승룡은 “누구나 보일 수 있는 서툰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다들 ‘촌뜨기’ 같다”면서 “그런 모습들을 때문에 관석이나 캐릭터들이 절대 악이거나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캐릭터를 죽이지 말고 살려달라는 의견들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결국 죽은 줄로만 알았던 관석은 살아남는다. 촌뜨기들 중 손꼽는 ‘생존자’다. 드라마는 경주에서 또 다른 도굴에 나선 관석을 비추며 끝이 난다. 관석의 죽음으로 촬영을 끝냈지만, 후에 강윤성 감독이 “살리자”라며 제안을 하면서 생사가 바뀌었다. 류승룡은 “관석이 ‘생존’은 했지만, 파국을 피한 건 아니다”고 했다. 관석의 가족들의 생사가 명확히 그려지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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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은 “악인인 관석이 ‘살아남는 것이 맞나’라고 했을 때 나는 관석의 가족들이 과연 살았을까 죽었을까를 생각했다”면서 “관석이 악인이 되면서까지 살아온 원동력은 가족인데, 만약 자기 대신 ‘가족이 죽었다면 그만큼 큰 형벌이 어디에 있을까’란 생각으로 관석의 생존을 이해하려 했다”고 말했다.
‘파인’이 가진 서사 개연성, 특유의 분위기를 완성한 것은 배우들이었다. 드라마는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역할을 맡은 배우들까지 꼼꼼하게 비추며 ‘서툰 인간 군상들의 민낯’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특히나 주연을 옆에서 받친 홍기준(황선장 역), 김진욱(이복근 역), 권동호(김덕산 역), 원현준(김코치 역) 등 조연들의 연기가 큰 주목을 받았다. 류승룡은 이들의 연기를 보며 “깜짝 놀랐고, 엄청나게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제1의 관객으로서, 좋은 배우들의 명불허전 연기를 라이브로 보는 호사를 누렸다. 원석이 보석이 돼 가는 과정을 지켜본 기분”이라면서 “너무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계속, 만날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잠깐잠깐 나오는 배우들까지도 제 역할을 다해줘 드라마가 더욱 풍성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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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숙 역의 임수정과는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13년 만에 작품에서 재회했다. 류승룡은 극 중 임수정의 연기를 떠올리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는 “양정숙이 춤추는 신은 정말 드라마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버라이어티한 연기를 보여줬다”면서 “(대본을 보며) 여자로 태어난다면 그 역할을 꼭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임수정의 연기를 보며 꿈을 포기했다”며 웃었다.
데뷔 21년 차인 그는 무명 시절을 지나 주연의 반열에 올랐다. 한때 ‘늦게 피는 꽃’이란 격려가 그를 움직이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 류승룡은 중년의 시기를 잘 보내고 싶다는 다짐으로 움직인다. 그의 차기작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그렇다. 잘살아 보고 싶은 중년의 이야기다.
류승룡은 “55세가 되면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요즘엔 ‘그 시기를 잘 보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강하다”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이때를 좀더 지혜롭게 맞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다. 비슷한 시기를 함께하는 이들과 이 시기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고민에 대한 공감대를 잘 형성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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