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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N 홍동희 선임기자) 가장 차가운 곳에서 가장 뜨거운 이야기가 피어올랐다. 202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개봉하는 영화 '신의악단'(감독 김형협)은 '북한 보위부 장교가 외화벌이를 위해 가짜 찬양단을 만든다'는, 언뜻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발칙한 설정을 단순한 코미디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아이러니 속에 '사람'을 심고, '음악'으로 물을 주어 끝내 묵직한 감동의 열매를 맺게 한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소재의 신선함'과 이를 풀어내는 '진정성'이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 땅, 그것도 체제 수호의 최전선에 있는 보위부 장교들이 찬양가를 불러야 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서스펜스다. 영화는 서로의 정체를 숨긴 채 가짜 찬양단을 꾸리는 전반부의 쫄깃한 긴장감에서 출발해, 점차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 후반부의 드라마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특히 7번방의 선물을 각색한 故 김황성 작가가 다져놓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 위에 김형협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더해져, 이질적인 두 소재는 놀라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가짜'로 시작한 노래가 어느 순간 '진심'이 되어 울려 퍼질 때, 관객은 이념과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인 인류애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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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악단'에서 가장 눈부신 발견은 단연 배우 정진운이다. 그룹 2AM의 감성 발라더나 예능에서의 유쾌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악단을 감시하는 보위부원 '김태성' 역을 맡은 그는 서늘한 눈빛과 절제된 감정 연기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날카롭고 예민한 보위부원의 모습 뒤에 감춰진 고뇌와, 자유를 향한 갈망을 표현해내는 정진운의 연기는 기대 이상으로 깊고 단단하다. 특히 영하 30~40도를 넘나드는 몽골의 설원을 홀로 걷는 장면에서 그가 보여준 고독한 아우라는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김태성이라는 인물이 가진 복합적인 내면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그는, 이제 '연기돌'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온전한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10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박시후 역시 냉철함과 인간미를 오가는 '박교순' 역으로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아준다. 그의 안정적인 연기는 자칫 들뜰 수 있는 장르적 설정을 현실에 발붙이게 만드는 힘이다. 여기에 태항호, 서동원, 장지건, 최선자 등 베테랑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티격태격하며 쌓아가는 관계성은 '사람 냄새' 나는 휴먼 드라마의 정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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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각과 청각적 쾌감 또한 놓치지 않는다. 영하 40도의 혹한을 뚫고 몽골 올 로케이션으로 담아낸 광활한 설원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미장센이 된다.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광야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며 몰입감을 높인다.
무엇보다 '신의악단'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음악이 주는 힘이 대단하다. 영화에 흐르는 '광야를 지나며', 'Way Maker', '은혜' 등의 곡들은 기독교 색채가 짙은 CCM 명곡들이다. 종교가 없는 관객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곡들이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마치 영화 '시스터 액트' 속 찬양곡들이 종교를 넘어 흥겨운 팝송처럼 다가왔던 것처럼, 이 영화의 음악들 역시 세련된 편곡과 극적인 연출을 입고 영화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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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감보다는 웅장함을, 종교적 메시지보다는 인물들의 절박한 심정을 대변하는 하나의 '언어'로서 기능하며 감동을 배가시킨다. 여기에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 같은 대중가요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극의 완급을 조절한다. 영화관의 풍성한 사운드로 듣는 합창 씬은 그 자체로 전율이다.
'신의악단'은 화려한 CG나 자극적인 설정 대신,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사람'의 이야기로 승부하는 영화다. 2025년의 끝자락, 거친 세상살이에 지친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건네는 위로는 뜨겁고도 명확하다. "서로의 본심을 이해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가족, 연인, 혹은 혼자라도 좋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싶은 관객이라면 극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사진=CJ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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