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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미러링’ 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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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인도 드라마 <남자들의 세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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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형적인 가부장 가정에서 자란 청년 키란(가우라브 판데이)은 성차별 철폐를 외치는 요즘 여성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현대 사회는 여성들에게 더 우호적이라고 생각한다. 버스의 임신부 지정석이 그 증거다. 직장에서 워킹맘의 애환을 토로하는 동료에게는 이 사회가 모성애를 얼마나 고귀하게 생각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며 동료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임신한 동료의 육아휴직 때문에 업무가 늘어나자 급기야 키란은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세상이 뒤바뀌게 해주세요.’ 다음날 키란은 핑크색 옷을 입고 침대에서 눈을 뜬다. 신이 그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인도는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7년 성 격차 보고서’에서 조사 대상국 144개국 중 114위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성 불평등 국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공고한 젠더 위계질서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15년 발표된 웹드라마 <남자들의 세상>(원제 ‘Man's World’)은 그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상의 성 반전 사회를 통해 인도의 뿌리 깊은 성차별 문화를 비판한 이 판타지 드라마는 뚜렷한 주제의식과 재치있는 풍자로 화제를 모았다. 올해 넷플릭스가 전세계로 배급해 호평받은 프랑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가 바로 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남자들의 세상> 첫회는 남자들은 식탁에 앉아 있고 여성들은 부엌에 서서 식사를 준비하는 가부장적 가족의 흔한 아침 풍경으로 시작한다. 키란의 아버지가 읽는 신문에는 여성들의 시위 장면과 여성에게 더 안전한 국가를 약속하겠다는 총리의 발언이 실려 있다. 2012년, 수도 뉴델리에서 발생한 버스 집단 성폭행 사건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성범죄 때문에 지속적으로 거리로 나서 생존권 보장을 외쳐야 하는 인도 여성들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비추는 도입부다.

잔혹한 현실 위에서 출발한 드라마는 키란의 기도를 계기로 판타지로 급전환한다. 뒤집힌 세상에서 눈을 뜬 키란은 자신의 생각과는 크게 다른 환경에 충격을 받는다. 여자들로 가득한 정류장에서는 노골적인 품평의 시선에 둘러싸이고, 여성들이 고위직을 독점한 회사에서는 임금차별과 성희롱에 시달리는 것이 키란의 새로운 일상이 된다. 에피소드당 15분 내외의 짧은 4부작 드라마지만 가정, 직장, 결혼제도를 통과하며 혼돈을 겪는 키란의 시점을 통해 성차별적 현실을 압축적으로 재현한 수작이다.

우리나라 역시 인도 못지않은 성 불평등 국가다. 앞서 인도가 114위를 기록한 ‘2017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이 기록한 순위는 118위였다. 지난 13일 지방선거에서도 이러한 현실이 결과에 반영됐다. 혁신적인 지역구도 타파로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실현한 역사적 선거로 기록됐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남성 정치인의 독무대였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후보 중 네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페미니스트 후보의 선전만이 변화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을 반영했을 뿐이다. 이곳의 여성들에게도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이 필요하다.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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