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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살인사건 피해자 엄마의 미모’까지 취재? 부끄러움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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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드라마 <브로드처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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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아름다운 해안마을 브로드처치에서 11살 아동 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대니 라티머(오스카 맥나마라), 운동 삼아 새벽마다 동네에 신문을 돌리던 소년이었다. 주민 모두가 아는 사이인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온다. 담당 형사 알렉 하디(데이비드 테넌트)와 엘리 밀러(올리비아 콜먼)는 알리바이가 불확실한 주민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부친인 마크 라티머(앤드루 버컨)까지 용의선상에 오른다. 친밀한 이웃이 잔혹한 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의심과 불안은 마을을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2013년 영국 아이티브이(ITV)에서 방영된 <브로드처치>(원제 ‘Broadchurch’)는 역대 최고의 수사물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드라마다. 세계 유수의 티브이 관련 시상식을 휩쓴 것은 물론이고, 100개국 이상에 판매되며 큰 인기를 모았다. 기존의 수사물과 차별화된 탁월한 대본과 연출이 호평의 원인이다. 도시를 불안에 떨게 하는 잔혹한 연쇄 살인, 기괴하고 변태적인 살인마, 독특한 개성을 지닌 형사 주인공 등 수사물에 흔히 등장하는 요소들은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다. <브로드처치>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하다. 용의자가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각자의 어두운 비밀이 드러나지만, 충격적 반전을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를 말해주는 단서들일 뿐이다.

<브로드처치>가 집중하는 것은 하나의 죽음을 대하는 공동체의 태도다. 범인을 밝히는 과정보다 대니의 죽음 이후 비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 사건에 시즌 전체를 할애하는 더딘 전개가 지루할 수도 있으나, 인물들의 심리에 몰입하고 나면 그 속도가 드라마의 윤리의식과 연결됐다는 걸 깨닫게 된다. 너무나 많은 죽음이 너무도 빨리 잊히는 시대에, 드라마는 사건 해결의 목적이 억울한 죽음에 대한 충분한 애도에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묵직한 행보를 이어간다.

이 같은 주제를 잘 드러내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한 메이저 언론의 대니 사건 보도다. 대니가 좀 더 어린 소녀였다면 훨씬 큰 대중적 관심을 받았을 것이라는 담당 기자의 말이나 대니 모친 베스(조디 휘터커)의 미모를 이용해 화제몰이를 하는 보도는 이 시대가 죽음을 다루는 태도가 어디까지 타락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강진에서 일어난 고등학생 살인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굳이 ‘여고생’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살인 용의자의 난잡한 사생활을 묶어 자극적으로 다루는 기사가 넘쳐난다. 유족에 대한 배려나 진지한 애도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그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나타난다. 그 선정적인 기사들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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