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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화려하지만 공허한, 장기불황 시대의 문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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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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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하라 그룹의 외동딸 니시하라 미와(이가와 하루카)는 25번째 생일 기념 선상 파티에서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남자 가타세 료(기무라 다쿠야)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파티에 참석한 미와의 전 가정교사 도지마 유코(후카쓰 에리)와 그의 오빠이자 형사인 도지마 간조(아카시야 산마) 역시 잠깐 마주친 료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료는 세 인물과 계속해서 얽힌다. 미와는 료가 자신에게 접근한 목적을 알고 난 뒤에도 그에게 깊숙이 빠져들고, 유코는 료를 경계하면서도 자꾸만 신경을 쓰게 되며, 간조는 자신이 담당한 살인사건에 료가 연루됐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료의 또 다른 여자 미야시타 유키(시바사키 고)가 나타난다.

2002년 일본 <후지 티브이>가 방영한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은 어두운 비밀을 지닌 남자 가타세 료와 그의 위험한 운명에 함께 휘말린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멜로드라마다. 일본 ‘로맨스의 신’이라 불리는 작가 기타가와 에리코가 쓴 충격적인 스토리와 화려한 캐스팅으로 방영 내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근 이 드라마의 동명 리메이크작이 <티브이엔>(tvN)에서 방영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판에서는 기무라 다쿠야가 맡았던 남주인공 역을 서인국이, 후카쓰 에리가 맡은 여주인공 역을 정소민이 연기한다. 워낙 전설적인 작품이라 리메이크작도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당시 일본 사회상과 뗄 수 없는 원작의 공허한 분위기를 잘 표현할지는 미지수다.

일본판의 핵심적 분위기는 첫 회 도입부인 니시하라 그룹 선상 파티에서 잘 드러난다. 회장이 연설에서 언급한 “믿을 수 없는 불경기”는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의 장기 불황을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란하고 화려하게 치러지는 파티는 역설적으로 더 어두운 전망을 암시한다. 밤하늘에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모든 이의 시선이 거기에 쏠린 와중에 배 한편에서 미와에게 거짓 애정을 표하며 키스하는 료의 모습은 그 불꽃놀이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이후에는 직접적인 사회상 언급이 거의 없지만 뒤로 갈수록 격렬한 파국으로 치닫는 인물들의 운명은 이미 도입부에서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품 안에 배어 있는 비관적이고 허무한 정서를 완벽하게 체현하는 기무라 다쿠야의 존재감도 절대적이다. 파국의 결말을 진작부터 온몸으로 흡수한 듯한 그의 캐릭터는 블랙홀 같은 마력으로 주변 인물들의 결핍과 어둠을 그대로 빨아들인다.

하지만 당대의 상황이 만들어낸 이 문제작이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 국내에서도 먹힐까. 이미 이 작품의 영향력은 2000년대 국내 멜로드라마에서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시대적 정서는 사라지고 근친애, 살인, 자살 등 자극적인 소재만 남는 건 아닐까. 너무 뒤늦은 리메이크라는 생각을 감추기가 어렵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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