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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서로를 더 알아가고 성장시키는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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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최고의 이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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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리메이크가 유행이다. 지난주 첫 방송을 내보낸 <티브이엔>(tvN)의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에 이어 이번주에도 <한국방송>(KBS)에서 또 한 편의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 <최고의 이혼>을 공개했다. 동명의 원작은 2013년 <후지티브이>에서 방영해 높은 시청률과 호평을 얻어낸 수작이다. 두 부부가 이혼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최고의 이혼>은 높은 비혼율과 이혼율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양국에서 모두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실제로 한국판 첫회 방영분을 보면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도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원작에는 일본에서 더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다. 이 대재난은 2만여명의 사망, 실종자와 30만명 이상의 이재민 등 직접적 피해 이외에도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왔다. ‘지진이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급증한 이혼율도 그중 하나다. 재난 과정에서 가치관의 차이를 크게 느낀 부부들이 많아진 결과였다. 반대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연인들은 재난 이후 가정을 이루는 사례가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 이 역시 크게는 후유증 안에 있다. 결과적으로는 외부적 요인이 결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 방영된 <최고의 이혼> 역시 이 대재난에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다. 하마사키 미쓰오(에이타)와 유카(오노 마치코)는 거래처 직원으로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그날, 지진으로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이 모두 끊겨 ‘귀택 난민’이 된 두 사람은 불안한 얼굴로 가득한 밤거리에서 집을 향해 걷다가 서로를 알아본다. 같은 얼굴의 타인들 사이에서 ‘아는 얼굴’이 주는 위안은 둘을 하나로 엮는다. 밤새 나란히 걷던 두 사람은 유카의 집에 도착해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자연스럽게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비일상적인 경험은, 가뜩이나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구석이라곤 없는 두 사람이 2년여의 결혼 생활 내내 삐걱이는 원인이 된다.

매우 극적인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최고의 이혼>은 결국 지극히 평범한 삶의 진리를 말하는 드라마다. 우리는 전부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다른 길을 걸으며 자라온 타인”이라는 진리. 결혼은 그 타인들이 만나 같은 길을 걷는 일이 아니라, 여전히 다른 길을 그저 보조를 맞춰 걷는 일이다. 하지만 미쓰오와 유카는 첫 만남 이후 그저 부부, 가족이라는 이유로 한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여 살았다.

때론 이혼이 모두 타인이라는 진리를 더 실감시켜주는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타인임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와 예의를 지킬 때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미쓰오와 유카 또한 이혼을 통해 이 진리를 깨달은 뒤 비로소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극적이고 특별한 사건이 어떤 선택의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길을 어떻게, 누구와 걸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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