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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저출산 위기 사회의 발칙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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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 시대, 만약 정부가 결혼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내놓는다면? 세계 최고의 고령 국가 일본에서 최근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나왔다. 지난달부터 방영을 시작한 도카이티브이의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는 이른바 ‘추첨 중매 결혼법’이 시행된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소재는 가상이지만, 50살 시점에서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 즉 생애미혼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일본의 위기와 이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극중에서 일본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독신 남녀에게 추첨 방식을 통해 결혼 상대를 배정해주는 파격적인 법안을 내놓는다. 대상은 이혼 전적과 자녀와 전과가 없는, 25살부터 39살까지 미혼 남녀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2회까지 거절할 수 있고 3회의 기회를 모두 거절한다면 ‘테러대책 활동 후방지원대’에서 2년 동안 근무해야 한다. 당연히 나라가 발칵 뒤집힌다. 야당은 인권침해라 반발하고, 전문가들은 법안 시행으로 따라오는 육아휴직 증가, 보육시설 부족 문제 등 구체적인 부작용을 지적한다.

이러한 현실적 배경을 생각할 새도 없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해결해야 하는 독신 남녀들은 각자 고민에 빠진다. 보수적인 중산층에서 자라 착실하게 ‘신부 수업’을 받아온 후유무라 나나(다카나시 린)는 애인 긴바야시 란보(오타니 료헤이)와 결혼을 서두르려 하나, 자신과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그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잘생긴 외모, 안정된 직장을 갖추고도 결벽증과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연애는 꿈도 못 꾸는 미야사카 다쓰히코(노무라 슈헤이)는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봉사 대체가 가능한 간호사 스즈카케 요시미(사쓰카와 아이미)는 홀어머니를 홀로 부양해야 하는 현실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법안 시행 이후에는 출신, 배경, 성격, 가치관, 성정체성 등에 따른 더 다양한 갈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우리나라도 똑같이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함에도 공감이 되기보다는 이건 어디까지나 일본에서나 통할 수 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서로를 죽이게 하는 법안을 공표하며 시작되는 영화 <배틀로얄>이 그러했듯, 전체주의적 사회이기에 가능한 상상력이 있다. 물론 드라마는 이러한 특성까지 풍자하고 있다. 애초에 여당이 법안을 발표한 것 자체가 총리의 뇌물 스캔들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검은 의도의 결과물이었고, 그들 의도대로 국민의 관심은 법안에 쏠리게 된다. 이처럼 드라마 곳곳에서 베스트셀러 <70세 사망법안, 가결>의 저자이자 이 드라마의 원작자 가키야 미우 특유의 사회적 시선이 돋보이는 대목들이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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