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 운전사'부터 '1987' '말모이' 등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린 작품에서 활약한 배우 유해진(49). '소시민'의 입장에서 시대의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냈던 그가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에서는 독립군으로 분해 투쟁 정신과 더불어 치열한 삶을 대변하고자 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황해철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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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작품 진지하고 열성적인 태도로 일관해왔지만 '봉오동 전투'는 스스로 느끼기에도 그 무게와 마음가짐이 남달랐다고. "모든 힘을 빼고 오로지 진정성만을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최초의 승리를 이룬 독립군의 전투를 그렸다.
유해진은 이 영화에서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전설적인 독립군 황해철 역을 맡았다. 평소에는 허허실실이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민첩한 몸놀림과 대범함으로 일본군의 목을 거침없이 베는 비상한 솜씨를 가진 인물이다. 독보적인 캐릭터와 소화력을 가지고 '국사책을 찢고 나왔다'는 평을 얻고 있는 유해진과 '봉오동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유해진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황해철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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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영화를 보니 어떻던가?
- 속상한 점도, 좋은 점도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사회 끝나고 원신연 감독을 슬쩍 끌어안았다. '고생했네' 하면서. 원 감독이 정말 고생 많이 했거든. 지금도 조마조마해 하면서 애를 태우고 있다.
원신연 감독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것만으로 작품을 출연하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끌리면 하는 거다. 거기에 의미가 보태지만 끌림에 '더하기'가 되는 거지. 감독님이 이야기하는 '승리의 역사'에 희망을 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더해져서 출연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던 거다.
반대로 망설임의 요소도 있었을 것 같다
- 그렇다. 직전 영화가 '말모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고민이었냐면 '양심'의 문제였다. '말모이'도 '봉오동 전투'도 엄청난 희생을 하고, 선량한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데 내가 그런 큰일을 치른 분들의 이야기를 연달아 두 번이나 해도 되는 걸까? 좋은 인물들을, 좋은 캐릭터를 두 번이나 잇따라 맡게 된다는 게 양심의 문제로 느껴졌다. 그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거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황해철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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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부담이 연기에도 영향을 미치나?
- 그랬던 거 같다. 힘이 가지 않게 진정성 있게 느껴지도록 애썼던 거다. 진정성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전투신도 기교를 부리지 않고 살아남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주무기가 '항일대도'였다
- 무쇠 칼이다. 기교를 부리기 힘든 칼이었다. 액션 할 때도 '살아남자'는 마음가짐으로 했다. 한이 어린 동작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캐릭터의 톤을 잡는데도 힘들었을 거 같다. 영화의 무드는 무겁고 황해철은 중간중간 웃음 코드를 섞는 인물이었으니까
-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던 많은 독립군이 있었다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거기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가벼운 웃음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능한 범주 안에서 저런 농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그 범주를 찾는 게 저의 과제였다. 조우진 씨가 잘 맞춰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웃음 코드나 톤을 맞추기 위해 애드리브를 하기도 했나?
- 월강 추격대 중위 쿠사나키(이케우치 히로유키 분)가 '네 눈은 왜 그러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는 대사가 있는데 그 장면에서 황해철이 눈을 마구 깜빡인다. 그 장면이 애드리브였다. 제가 할 수 있는 '용서해줄 만큼'의 애드리브였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황해철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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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니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이 실감 나더라. 더운 여름부터 추운 겨울까지 촬영을 했다던데
- 겨울에 촬영을 시작했다. 정말 추웠다. 비바람이 미친 듯이 부는데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 비바람을 뚫고 산기슭을 달려야 하니 벅차더라.
평소 등산을 즐기는데, 그게 촬영에도 도움이 되나?
- 되는 거 같다. 산악영화 '빙우'(2003)를 찍으면서 암벽등반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작품을 계기로 등산을 취미 삼기 시작했는데 '봉오동 전투'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원 없이 뛰어본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다. 후련하더라. 속으로 '가슴에 한이 있나?' 싶었다. 막 뛰고 나면 속이 개운하고 그래서.
앞서 '말모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 중간에 전국 팔도에서 모인 독립군들이 감자에 관해 이야기를 펼치는 장면은 흡사 '말모이'를 떠올리게 했는데
- 저도 '아, 이거 말모이 같은데'라고 생각해서 감독님께 '저는 이 장면에서 빠져있겠다'고 했다. 감자를 두고 각 지역에서 어떻게 부르는지 의견을 내는 장면이 '말모이'에서 가위를 두고 이야기를 펼치는 장면처럼 보일까 봐서였다. 그래서 황해철이 바닥에 누워있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북한 사투리는 어땠나?
- 어렵지 않았다. 영화 '무사'(2001), '간첩'(2012) 등에서도 썼던 기억이 난다. 크게 낯설지 않았다. 사투리 선생님께서 '간첩' 때도 저를 지도했던 분이셔서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하하하.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황해철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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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 운전사' 이후 류준열과 다시 만났는데
- '택시운전사' 때는 (류)준열이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 이번에 함께 작품 하면서 '영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류준열, 류준열 하는구나. 하하하. 요즘 뭐 대세 아니겠나. 하는 것마다 잘 되고.
'봉오동 전투'는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였다. 그 점이 유해진의 마음도 흔들어놨다고 했었는데.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연기할 때도 영향을 미치나?
- 발란스와 앙상블이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가 집중될 수 있게끔 노력하는 것 같다. 우리 영화는 발란스가 잘 맞고 좋은 편이라 연기하기도 좋았다. 준열이는 묵직하게, 우진이는 적당히 가벼움과 묵직함을 오가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었던 거 같다.
'봉오동 전투' 포스터도 화제였다
- 포스터 사진을 겨냥하고 찍은 게 아니었다. (조)우진이가 그랬던가. 촬영을 마치고 '사진이나 한 장 찍읍시다' 하더라. 다들 모여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장난도 치지 않고 비장하게 찍었다. 누군가 저 사진을 보고 '그때 그 사람들 같다'고 하더라. 개인적으로 포스터를 굉장히 좋아한다.
차기작은 '승리호'다
- 요즘은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를 찍고 있다. 색다른 경험 중이다. 예전에 하지 못한 경험이랄까. 배경도 우주고 공간도 낯설기도 하고 CG도 많이 들어가니까. 어떻게 나오게 될지 궁금하다.
최송희 기자 alfie312@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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