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다룬 미국 케이블 채널 HBO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이 지난 14일 국내에 공개됐다. HBO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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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 화제작으로 꼽히는 미국 HBO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이 국내에 상륙했다.
1986년 4월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다룬 이 작품은 세계 최대 영화 정보 사이트 IMDB 관람객 평점 9.6점으로 <브레이킹 배드>, <플래닛 어스> 등을 제치고 ‘역대 최고 평점’을 받았다. 9월 열리는 에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미니시리즈상을 포함해 1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지난 5월 현지 방영 이후 참사 현장인 체르노빌을 찾는 ‘다크투어리즘’이 늘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는 체르노빌 참사 2년 뒤 모스크바에 있는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재러드 해리스)의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한다. “체르노빌 사건에서 정상적인 건 없었다. 거기서 일어난 일련의 과정은 옳은 일조차 전부 다 광란이었으니까.” 사고 당시 원인조사를 담당한 위원회를 이끌었던 레가소프는 카세트 녹음기 앞에 앉아 폭발사고 전후 과정과 이후 일어난 은폐된 진실에 대해 털어놓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시간은 다시 참사 당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유령도시’가 된 프리피야트의 한 아파트. 폭발 소리에 잠에서 깬 소방관 바실리 이그나텐코(애덤 나가이티스)는 “걱정할 일 없다”며 가족을 안심시킨 뒤 현장으로 향한다. 같은 시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부소장 아나톨리 댜틀로프(폴 리터)가 넋 나간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발전소 직원들이 방사능 계측기조차 제대로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댜틀로프가 소장에게 사고 위험성을 축소해 보고하는 사이 소방관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발전소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을 때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윌 곰퍼츠 BBC 아트 부문 편집장은 <체르노빌> 리뷰에서 별 다섯의 만점 평점과 함께 이 같은 시청소감을 남겼다. 영문을 모르는 주민들은 누출된 방사능이 공기를 이온화시켜 만든 ‘오로라’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고, 아이들은 떨어지는 방사능 재를 맞으며 눈을 만난 강아지처럼 뛰어다닌다. 체르노빌 참사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면, 현재 진행형인 비극의 결말을 알기 때문에 더 괴롭다.
재난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가 적지 않지만 <체르노빌>이 유독 찬사를 받는 건 연출의 ‘건조함’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반전, 눈물샘을 자극하는 휴머니즘 대신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밀도 있게 쌓아가며 “거짓의 대가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방사능 피폭 피해자들의 모습은 과장해 표현하지 않아도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지난 8일(현지시간) 러시아 해군훈련장에서 ‘제2의 체르노빌’을 우려하게 만드는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시선도 불안하다. 모두가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는 지금, <체르노빌>이 전하는 경고의 울림은 그래서 더 묵직하다. 레가소프의 녹취는 이렇게 끝난다.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건 거짓을 계속 듣다 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는다는 것이다.”
<체르노빌>은 지난 14일 왓챠플레이를 통해 단독 공개됐다. 평균 60분. 15세 이상 관람가.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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