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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좋은 사람이라서 이기는 세상...그곳에 살고 싶다. [TV에 밑줄 긋는 여자]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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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tvN 월·화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가 지난 20일 끝이 났다.

이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인기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의 리메이크작으로 화제를 낳았다.

공중파에서 월·화 드라마의 존폐를 논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60일, 지정생존자’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실제로 SBS는 한시적으로 월화 드라마를 폐지하고 예능 프로그램으로 대체를 시도 중이고, MBC는 현재 방영 중인 ’웰컴2라이프’ 이후 폐지할 예정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인사 300여명이 어느 날 테러로 목숨을 잃게 되고, 당시 사표 제출로 테러를 피한 환경부 장관 박무진(지진희 분·사진)이 정부 주요인사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헌법상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 60일이 그에게 주어진 직무대행 기간이자 이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이다.

리메이크 드라마의 한계로 꼽히는 원작과 다른 정서, 사회 분위기를 작가와 감독은 대한민국 현 시점과 정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변주했다. 북한과의 핵문제, 대권후보들 간의 이야기, 언론 상대 청와대의 브리핑 장면 등 현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이슈들을 과하지 않게 담아내 극의 몰입도를 배가시켜 주었다.

더불어 이 드라마가 끝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주인공 박무진에게만 집중되는 이야기의 구조를 벗어나 대통령 비서실장 차영진(손석구 분), 청와대 대변인 김남욱(이무생 분), 전 정부 비서실장 한주승 (허준호 분) 등 연기력이 꽉찬 ‘청와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과하게 않게 담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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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무진과 잦은 의견 대립에도 결국 그의 편에 서서 그가 끝까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켜주었던 비서실장 역의 배우 손석구(사진)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많은 시청자에게 ‘참 연기 잘하는 좋은 배우’로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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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지막까지 드라마의 반전을 선사해준 한주승 역의 허준호(사진)는 왜 그가 ‘명품배우’인지 재확인시켜주었다. 드라마 초반 박무진과의 대립과 충돌 후 협력, 마지막 반전까지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것을 보고, 연기 잘하는 배우는 나이가 들어도 멋있고 ‘나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연기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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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김남욱 역의 배우 이무생(사진)은 전작 MBC 드라마 ’봄밤’의 돈과 물욕에만 눈이 먼 치과의사에서 순박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새터민 출신 청와대 대변인 역할을 누구보다 잘 소화해 내서 이들 두 사람이 정말 같은 인물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드라마 초반에는 심지어 방영 날짜도 같았다.

엄청난 세명의 배우, 현실을 반영한 탄탄한 스토리 전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국회의사당 폭파 신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의미가 있었으나 다소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테러의 배후세력을 찾아내는 드라마 중반 이후 과도한 힘을 쏟아 이야기의 힘을 잃기도 했고, 몇몇 고정화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로 인해 극의 몰입도가 과하게 떨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방송에서 날린 ‘한방’이 이 드라마를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할 듯하다. 대선 후보를 사퇴한 박무진은 다시 학교로 가서 후학 양성에 힘쓴다. 이때 네 명의 보좌관들이 다시 그를 찾아 대통령 후보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그가 망설이자 대변인이었던 김남욱이 이렇게 한마디 던진다.

“저도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 좋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 좋은 사람이라서 이기는 세상을.”

#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마지막회 대사 중에서

좋은 사람은 호구가 되는 세상이다. 나보다 힘이 약한 이를 돕고, 모임이나 단체에서 특별한 이득이 없음에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그저 ‘사람만 좋은 사람’이라고 치부하며 모르는 척하는 세상, 유치원생들도 ‘경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단 채 조금이라도 득이 되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 이 사회에서 어쩌면 이 대사는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또다시 꿈꾼다. 그런 세상이 올지도 모르고, ‘좋은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그런 세상은 좀더 일찍 오지 않을까라고.

이윤영 작가, 콘텐츠 디렉터 blog.naver.com/rosa0509, bruch.co.kr/@rosa0509

사진=tvN ‘60일 지정생존자’ 캡처

*이 작가는 방송과 영화, 책 등 다양한 대중 콘텐츠를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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