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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내 머물 곳은 어디에' 연가희 "어머니께 인정받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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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연가희(사진=C3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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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어머니한테 가수로 인정받고 ‘내 딸 노래하는구나’라는 말을 듣는 게 소원입니다.”

어느 덧 40대 중반이 된 연가희 눈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무명 가수로 활동해 왔지만 일본에서는 ‘민요 가수’로 교민들에게 제법 알려졌고 한국에서도 행사업계에서는 나름 입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없는 돈 다 긁어모아 힘들게 첫 앨범을 냈을 때도 차갑게만 대했던 어머니는 10여년 만에 모친 장례식장에서 재회한 딸을 여전히 가수로 인정하지 않았다.

“외할머니 빈소에서 어머니를 오랜만에 만났지만 결국 제대로 이야기도 못나누고 싸우기만 했어요. 제가 어머니 앞에서 까무라치기까지 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자식들 키우며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지만 어떡하겠어요. 전 노래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데.”

사회에 나와서 경력의 첫줄은 모델이었다.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키가 크니 모델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았고 패션모델, 내레이터 모델, 워킹 강사까지 했다. 연기자에 도전해 방송사 공채 탤런트 시험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너무 하고 싶었던 게 노래였다. 주거지였던 충북 청주의 악기사를 찾아가 “노래 좀 시켜달라”고 했다. 경험이 없어 안된다는 악기사 관계자 앞에서 즉석에서 트롯 곡 수십곡을 불러 ‘끼’를 인정받았다. 악기사에서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업소 무대를 소개했고 무보수로 전국 각지 업소에서 공연을 했다.

그러나 업소 공연만으로 가수로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돈을 모아 앨범을 제작했다. 그 동안 공연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은 만큼 앨범만 내면 가수로서 승부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족한 돈으로 제작한 앨범은 너무 엉망이었다. 2000장을 모두 갖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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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3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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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갖추고 싶었다. 그래서 민요학원에 다녔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었던 장구를 더했다. 그걸로 일본에 갔다. 일본 재래시장 내 푸줏간에서 일하고 짐도 나르면서 돈을 버는 한편 가요와 민요를 접목시킨 무대로 활동을 병행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2014년 한국에 들어와 상모팀과 함께 공연을 다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돈을 벌기 어려웠고 다시 일본에 들어갔다. 현지 기획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사기를 당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았다. 극단적인 시도를 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봤는데 너무 허망했다.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연가희는 “난 한국에서 제대로 앨범을 내고 활동한 적이 없는데 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만들어진 동영상이 있는 걸 봤다”며 “지인들 중 그런 영상을 만든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누군가는 내 음악을 들어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희망을 봤고 죽을 힘을 다해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교포들을 대상으로 260석 규모의 디너쇼도 개최해 매진을 시킬 정도로 입지를 쌓았다. 최홍만이 게스트로 참석하고 일본 유명인들도 우정출연을 해 줄 정도였다. 장구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퓨전 가수로 교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한국에 돌아왔다. 고국에서 활동하고 싶은 바람은 항상 있었다. 지난해 상반기 신곡 ‘내 머물 곳은 어디에’와 ‘좋을 걸’을 발표하고 새로운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애초 흥겨운 트롯곡 ‘좋을 걸’ 녹음을 예정하고 연습을 해왔는데 연습 마지막날 작곡가에게 갔더니 발라드 풍의 ‘내 머물 곳은 어디에’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 음악이 너무 마음에 들어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작곡가 어깨 넘어로 악보를 보며 따라불렀다. 아직 누구를 줄지 정하지 않은 노래라는 얘기에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세 번 연습해 불러보고 바로 녹음을 했다.

“쿵짝쿵짝 신나는 노래만 트롯이 아니잖아요. 전 최진희 선배님, 계은숙 선배님 스타일에 더 가깝거든요.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감성이 잘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재개한 한국 활동이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생각하고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고 했다. 행사 섭외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내 머물 곳은’ 제가 무대에 오르게 불러주는 그곳이죠. 그러다 보면 KBS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 무대에도 오를 수 있을 거고 어머니가 제 무대를 보실 날도 있을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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