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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블랙머니' 끔찍한 금융범죄 실화, 노련한 고발 [무비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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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영화 블랙머니 리뷰 / 사진=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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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충격적인 금융범죄 실화가 있다. 그저 흘러가는 옛 뉴스로 잊힌 사건이다. 많은 이들이 안일하게 생각했던 한낱 이슈거리 이면에는 거대하고 끔찍한 내막이 있다. 이는 평범하고 안일했던 국민들의 삶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알 수 없는 국민들을 우롱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대한민국 1% 엘리트들의 끔찍한 카르텔을 고발하고 진실을 알리는 영화 '블랙머니'. 이미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작품이다.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제작 질라라비)는 IMF 이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소재를 바탕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얽히고설킨 방대하고 복잡한 실제 사건은 생생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이야기로 완성됐다.

극을 이끄는 건 수사를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막가는 막프로 양민혁 검사다. 사건 담당 피의자가 자살해 성추행 검사란 낙인이 찍힌 후,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 몰린 그가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내막을 파헤치던 중 금융감독원,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사건의 실체를 단순 요약하면, 70조 원의 자산 가치가 있는 은행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단 몇 장의 팩스만으로 외국 투자사에 헐값으로 팔린다. 이후 은행 매각 과정에서 정부 기관의 심의가 벌어진다. 외국 투자사는 이런 한국 정부 때문에 매각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실제 5조 원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국제소송을 냈다. 한국 정부가 질 확률 99%.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국민들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알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금융범죄 사기극은 이토록 끔찍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이 배후에는 정부도 권력기관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대한민국 1% 엘리트 기득권 세력이 결탁돼있다.

이 기막히고 충격적인 사건을 좇는 양민혁의 거침없는 질주는 통쾌하고 때론 유머러스하다. 사건 앞에 성역 없고 계급 없는 양민혁은 불법 도청과 불법 수사도 서슴지 않고 갖은 잔꾀를 부리며 기득권 세력의 심기를 거슬린다. 그 모양이 그렇게 잔망스럽고 통쾌할 수 없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무모하게 들이대는 그의 모습은 거대한 금융 실화 범죄라는 키워드 앞에서도 내내 숨 쉴 틈을 내어준다.

그동안 어두운 사회의 이면과 불편한 실상을 적나라한 시선으로 파헤치던 정지영 감독은 양민혁이란 괴짜 캐릭터를 통해 유하고 완만하게 사건에 접근해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어렵고 복잡한 경제 이야기, 생소한 사건을 쉽게 풀이하기 위한 감독의 노련한 한 수다. 감독은 관객이 자연스레 사건을 쫓아올 수 있도록 이끄는 화자 역할을 친근하고 인간미 넘치는 양민혁에 수행케 하며 내막을 알리고 이해와 몰입도를 높인다.

그렇기에 마지막 고발 신은 여운이 거세다. 오롯이 이 마지막 순간을 위해 빠르고 강렬하게 달려온 양민혁의 질주, 그 마지막에 다다라 울분을 토하는 절정이다. 부조리한 카르텔, 불공정한 권력, 거대한 세계에 맞선 한 개인의 거센 분노와 울분 섞인 고발은 안타까운 연민과 뜨거운 연대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놀라운 캐릭터 흡입력으로 양민혁의 질주를 달려온 조진웅은 이미 캐릭터 그 자체로 녹아들어 진정성을 전한다. 이밖에 신념으로 인한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한 김나리 역의 이하늬를 비롯해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 인권 변호사 서권영 역의 최덕문, 양민혁에 정서적 지지와 도움을 주는 장 수사관 역을 따스한 온도로 연기한 강신일 등 명품 조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특히 거대 권력에 맞서는 검찰총장으로 특별출연한 이성민은 짧은 분량으로도 시선을 압도하며 남다른 내공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꿰뚫은 사건의 본질, 통쾌한 캐릭터를 내세워 흥미진진한 고발 영화의 상업적 기능까지 매끄럽게 완성한 정지영 감독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11월 13일 개봉.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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