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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100년 넘은 재즈 아직 젊어…늘 열린 음악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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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두 차례 받은 가수 나윤선

27세 재즈 공부하러 유학길, 이젠 최고 재즈 보컬리스트…프랑스에선 이름 딴 도로도

12일부터 전국투어 공연

경향신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 엔플러그 제공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짐을 싼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도착하면 짐을 풀고 무대에 오른다. 노래를 부르고 관객을 만난다. 다음날이면 또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같은 하루가 펼쳐진다. ‘현대 재즈의 목소리’라 불리는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50)의 삶은 ‘반복’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보면 주인공이 매일 ‘같은 날’ 아침에 깨어나 매번 다른 삶을 살잖아요. 저도 그래요. 거의 매일 다른 곳, 다른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다보니 늘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나윤선에게 반복은 ‘제자리’가 아니다. 늘 처음 같은 그의 매일은 때론 완곡하고 때론 가파른 ‘성장’의 그래프를 그리며 나아간다. 지난달 28일 그는 한국 가수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셰’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코망되르(Commandeur), 오피셰(Officier), 슈발리에(Chevalier) 3개 등급으로 구성된 문화예술공로훈장에서 슈발리에장을 받았던 2009년 이후 10년 만에 한 계단 더 높이 올라선 것이다. 27세에 ‘재즈가 대중음악의 원조’라는 친구 말에 좋아하던 ‘샹송의 나라’ 프랑스로 덜컥 떠나 재즈 공부를 시작했던 그는 어느덧 유럽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프랑스와 독일 시상식과 차트를 휩쓸었고, 프랑스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로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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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선이 지난달 28일 프랑스대사관에서 세계 문화와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오피셰’ 훈장을 받고 있다. 엔플러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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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는지 감사한 일이 참 많았죠. 하지만 제가 상이나 훈장을 받는다고 해서 바로 다음날 아침 더 좋은 가수가 돼 있는 건 아니거든요. 매일 ‘난 안될 거야’ 좌절하고, 또 매일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다짐해요. 당장 내일이 공연인데 멋지게 해내야 하잖아요.” 지난 4월 발매한 10집 <이머전(Immersion·몰입)> 월드투어 콘서트의 일환으로 한국 전국투어 공연을 위해 내한한 나윤선을 2일 서울 강남구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어디론가 가고 있어야 마음이 안정돼요. 이게 팔자라는 걸까요?” 매년 전 세계를 누비며 100회 이상의 공연을 하는 그는 1년 365일 중 최소 200일을 ‘떠돌며’ 보낸다. 그는 지역의 경계뿐만 아니라 음악의 경계까지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음악가다. “재즈가 뭔지도 모르고” 뒤늦게 떠난 27세의 유학길, 엘라 피츠제럴드나 사라 본 등 고전적인 미국의 재즈 보컬을 흉내 내려다 1년 만에 벽에 부딪혔다. 그를 다시 재즈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은 클래식과 민속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관대하게 껴안는 현대 재즈의 자유로움이었다. 이후 그에게 재즈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음악”이 됐다. “김민기, 유재하, 이문세, 산울림, 조동익 등 한국 가요를 들으며 자란 저만의 감성으로 노래했어요.”

“재즈는 100년이 훨씬 넘은 음악이지만 아직도 젊어요. 저 역시 항상 젊은, 늘 열려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고이지 않은 물처럼요.” 지난 3월 세계적 메이저 음반사인 워너 뮤직과 계약한 이후 처음 내놓은 10집 <이머전> 역시 ‘이것도 재즈’라는 자유로운 선언들로 가득하다. “정통 재즈 하시는 분들 보기엔 너무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더 황당한 재즈도 많거든요. 이 황당함 때문에 재즈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요.”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 등 록과 팝의 고전들을 개성 있게 편곡해 주목을 받았던 그답게 이번 앨범에서도 조지 해리슨의 ‘이즌 잇 어 피티(Isn’t It a Pity)’, 마빈 게이의 ‘머시 머시 미(Mercy Mercy Me)’ 같은 명곡을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재해석했다. 프랑스 브르타뉴로 떠난 작곡여행에서 탄생한 ‘미스틱 리버(Mysitc River)’ 등 6곡의 자작곡도 일렉트로닉, 월드 뮤직, 팝 등 다양한 장르를 떠올리게 하는 ‘황당한 재즈’를 펼쳐낸다.

“어린 시절 제게 음악은 피하고 싶은 ‘힘든 일’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됐네요(웃음).” 나윤선의 아버지는 국립합창단 초대 단장을 지낸 나영수씨, 어머니는 뮤지컬 1세대 성악가 김미정씨다. “어릴 때 아버지가 새벽 3시 이전에 주무시는 걸 본 일이 없어요. 식사할 때도 항상 악보를 들고 계시니까 반찬도 못 들고 밥만 드시는 일이 허다했죠.” 음악을 피해,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일반 회사에 취직했다. 그럼에도 음악은 그리고 운명은 그를 다시 잡아챘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통해 뒤늦게 음악을 시작하며 깨달았다. ‘나는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나윤선은 오는 12일 제주부터 부산, 청주, 강릉, 천안, 춘천, 서울 등 11개 도시 순회 공연을 이어간다. 한국 관객 앞에 서는 그의 마음은 남다르다. “훨씬 부담이 돼요. 1~2년에 한 번씩 찾는 제 가족이기 때문이죠. 오랜만에 집에 올 때는 선물을 잔뜩 사오고 싶잖아요. 제가 과연 선물이 될지, 제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드실지 걱정이 됩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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