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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탑골 GD' 양준일과 그의 원조 골수팬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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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말하고 싶었죠, 잊힌 날 기억해줘서 정말 고맙다고요!

1020이 찾은 90년대 스타 양준일

복귀 결심 후 가장 먼저 찾은 건 '월하' 찍은 공포영화감독 오인천

"양준일이라는 아이돌에 반해 작품마다 그의 이름을 넣었죠"

"저 같은 사람을 좋아하셨다니, 감독님도 그간 참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가수 양준일(51)이 말하자, 영화감독 오인천(40)은 귀 끝까지 얼굴을 붉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TV에서 본 순간부터 팬이었어요. 노래도 춤도 패션도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그런 양준일씨와 제가 지금 마주 보고 있다니, 꿈 아니죠?" 좌중이 와락 웃음을 터트렸다.

조선일보

지난 14일 만난 영화감독 오인천(왼쪽)과 가수 양준일. 양준일은 "영화마다 내 이름과 똑같은 등장인물을 넣어준 감독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꼭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오 감독은 "아내도 양준일씨 팬이다. 같이 양준일씨 음악 이야기를 하다 마음이 통했다. 내게 양준일은 단순한 가수 그 이상의 인물"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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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은 요즘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인물이다. 시쳇말로 '대세'가 됐다. 1991년 노래 '리베카'로 데뷔해 1993년까지 활동했고, 2001년 'V2'로 다시 나왔으나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이런 양준일을 재소환한 건 10~20대였다. 1990년대 흘러간 인기가요를 스트리밍하는 유튜브 채널이 뜨자, 이를 돌려보던 밀레니얼이 앳된 양준일 모습에 열광한 것. 이들은 양준일을 "탑골 GD(시대를 앞서간 지드래곤 같은 가수라는 뜻)"라고 부르며 흥분했다. 여기에 양씨가 비자 발급이 안 돼 미국에 돌아가야 했으며, 이후 미국 플로리다 한인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며 지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아재'의 인기는 돌풍이 됐다.

양준일도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팬카페 회원 수는 6만명을 넘겼고, 작년 말 열린 팬미팅 행사는 순식간에 전 석이 매진됐다. 광고 촬영과 각종 섭외가 밀려드는 중이다. 이런 양준일이 최근 본지를 통해 "오인천 영화감독이란 분을 찾아달라"고 연락해왔다. "저를 좋아해서 영화마다 제 이름을 딴 역할을 등장시킨 분이라고 들었다. 다른 모든 일정 미루고 그를 먼저 만나고 싶다. 도와달라." 지난 14일 서울 소공동 한 호텔에서 두 사람이 그렇게 마주했다. 양준일이 다가와 악수를 건네자 오 감독은 말을 더듬었다. "거짓말 같아요."

◇탑골 GD, 그의 골수팬 감독과 만나다

조선일보

1991년 방송에서 노래하는 앳된 모습의 양준일. /KBS 유튜브 캡처


오인천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하고 2014년 '소녀괴담'으로 데뷔한 공포영화 감독이다. 고전영화 '월하의 공동묘지'를 재해석한 '월하', 2018년 미국 애리조나 국제영화제 최우수 액션영화상을 받은 '데스트랩'이 대표작이다. 오인천은 "양준일에겐 대형 기획사에서 훈련받은 요즘 아이돌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그 매력에 빠져 영화마다 '양준일'이란 인물을 넣었다"고 했다. 가령 영화 '월하'에 등장하는 촬영기사 역할의 이름이 양준일. 계약서에 양준일이 '리베카 양'이란 이름을 쓰고 사인하는 장면도 있다. 2019년 '디엠지:리로드'에선 북한 군인 양준일이 "리베카!"라고 외친다.

양준일은 "이런 분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옛날부터 안티팬이 많았거든요(웃음). 제가 옷을 특이하게 입고 춤춰서 그런지, 절 보고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 '재수 없다'고 말하는 이가 많았어요. 지금은 절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비율이 살짝 바뀐 것뿐이고요. 그럴수록 예전부터 절 좋아해주는 분을 만나 감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정말 고맙다고요!"

◇"서두르지 말고, 지금을 즐겨요"

양준일이 복귀를 결심한 것은 다섯 살 아들 때문이다. 그는 "아이가 아빠를 식당 서빙 일 하는 사람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조금 미안했다. 아빠에게도 찬란한 시간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만보계로 재면 하루 10㎞ 넘게 걸을 정도로 식당에서 쉴 새 없이 일했다는 양씨다. 그는 "성실하게 살면 언젠간 좋은 일이 하나쯤 생긴다는 것도 아이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지난 삶을 담은 책도 곧 출간된다. 양준일은 "그래도 서두르고 싶진 않다"고 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절 미워한다는 자격지심에 괴로워했고, 갖은 아픔도 겪었어요. 지금은 그저 다 감사해요. 좋은 반응도 나쁜 반응도 다 기뻐요. 이 모든 것을 일단은 즐기고 싶어요. 같이 그래 주실래요?" 오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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