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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TEN 인터뷰]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경호실장의 무조건 충성, 이해되지 않아 괴로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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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태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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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을 연기한 배우 이희준. /사진제공=쇼박스


드라마 ‘넝쿨째 들어온 당신’, 영화 ‘1987’ ‘미쓰백’ 등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심어준 이희준이 또 한 번 연기 변신에 도전했다. 1979년, 권부의 2인자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 시해 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서다. 이희준은 극 중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을 연기했다. 캐릭터를 위해 체중을 25kg이나 늘린 그는 말투부터 몸의 움직임까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지만 외적인 변화보다 인물의 내면을 이해하는 게 더 큰 숙제였다는 이희준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곽상천의 첫인상은 어땠나?
이희준: 이해가 안됐다. 대통령에게 왜 이렇게 무조건 충성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거부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곽상천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자라왔고, 어떻게 대통령을 만났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경호실장 자리까지 올라갔을지 상상해봤다. 아마 곽상천은 대통령을 아버지 같은 존재로 여겼을 것 같다. 그렇기에 이 분이 하는 일은 모두 맞고 그게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확신했을 거다. 나는 이해가 안 되면 연기를 못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곽상천의 감정에 이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0. 국회의원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상사인 김규평(이병헌 분)에게도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안하무인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희준: 김규평과 곽상천 모두 국가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곽상천 입장에서는 김규평이 정말 답답했을 거다. 정보부장으로서 각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왜 우물쭈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규평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따끔한 충고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말이다. 인간 이희준이었다면 곽상천 같은 인물을 이해하려고도 안했을 거다.(웃음)

10. 곽상천의 최종 목표는 1인자가 되는 것이었을까?
이희준: 대통령이 곽상천에게 ‘네가 내 뒤를 이어라’라고 했다면 진심으로 아니라고 했을 거다. 곽상천은 대통령의 곁을 지키는 게 목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영화 속에서 가장 단순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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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스틸컷./사진제공=쇼박스


10. 외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꾀했다. 캐릭터를 위해 25kg을 늘렸는데 힘들지는 않았나?
이희준: 힘들더라도 살을 찌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본 속 캐릭터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결정은 했지만 뱃살이 나온다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아직 찌우지도 않았는데 심리적으로 토할 것 같았다. 스스로를 내려놓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10. 발성부터 몸의 움직임까지 완전히 바뀌었다.
이희준: 100kg이 되니 걷는 모습 자체가 달라졌다. 극장에서 김규평을 쳐다보는 장면에서도 한 번에 몸이 돌아가지 않아 삐걱거렸다. 살을 찌우니 확실히 무게감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목소리 톤도 낮아지고 호흡도 가빠졌다.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들은 심리적인 가면을 쓰는 캐릭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신체적인 가면을 쓰게 된 재밌는 경험이었다.

10. 대통령을 연기한 이성민과의 호흡은 어땠나?
이희준: 이성민 선배의 연기는 정말 놀라울 정도다. 미묘한 표정 변화만으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더라. 장면마다 계속 바뀌는 얼굴을 보며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머리로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다. 본능적인 연기의 대가다.

10. 정치적 색을 띠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 때문인지 영화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차갑게 느껴진다.
이희준: 그렇다. 감성적인 음악이 깔리면서 인물 클로즈업이 들어갈 때도 바로 밝은 장면으로 전환된다. 사건을 차갑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다. 보통의 영화라면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될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게 하나도 없다. 감독님은 40일간의 일을 편협하지 않게 담아내기 위해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있는 것처럼 연출했다. 더 표현하고 싶은 게 있었을 텐데도 절제하더라. 나 역시 ‘마약왕’(2018) 때는 애드리브를 많이 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더듬는 대사조차 대본에 나와 있는 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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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은 다이어트를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간 고시원에서 20년간 배우로 살아온 삶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다./사진제공=쇼박스


10. 다음 작품 계획은?
이희준: 드라마 ‘키마이라’ 촬영을 마쳤다. 지금은 편집 중인데 올해 방송 예정이다. 배우 수현, 박해수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10. 체중은 드라마를 위해 다시 줄였나?
이희준: 꼭 그런 건 아니다. 살찐 상태로 계속 있으면 당뇨가 올 수 있다고 해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헬스장에 같이 운동하는 친구가 있어서 3개월 간 빡세게 했다. 마지막 달은 정말 힘들었다. 보름간은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헬스장 근처에 있는 고시원에 방을 잡아 생활했다. 21살 때 연극한다고 고시원에서 1년 살았는데, 20년 뒤인 41살에 자발적으로 고시원에 들어가니 감회가 새롭더라. 어느 날은 고시원에서 닭가슴살을 먹는데 20년간 배우로 살아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면서 청승맞게 눈물이 났다. 하하.

10. 서울에 오기 전 대구에서 극단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이성민도 대구 극단 출신인데?
이희준: 같은 극단은 아니었다. 이성민 선배는 다른 극단 대표님이었다. 당시 대구에는 극단이 많지 않아 시에서 하는 큰 공연이 있으면 모든 극단이 다 모였다. 그래봐야 30명 정도다. 난 막내였고 이성민 선배는 쳐다보지도 못할 대선배님이었다. 그래선지 이번 영화에서도 깍듯함은 저절로 나오더라. 하하.

10. ‘남산의 부장들’을 하면서 배운 점은 무엇일까.
이희준: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내가 이해할 필요도 없었던 성격의 캐릭터에 공감하려 애쓰다보니 수련하는 느낌이 들었다. 선배님들의 훌륭한 연기를 보며 내 연기를 돌아보는 시간도 됐다. 배우란 정말 멋진 직업인 것 같다. 대중들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다음 작품 속 나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태유나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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