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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홍혜민의 B:TV] ‘그 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시트콤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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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이른바 ‘레전드 시트콤’들의 인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새롭게 제작되는 시트콤에 대한 반응은 냉담한 이유는 무엇일까. SBS,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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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탑골 문화’ 신드롬이 여전히 뜨거운 가운데, ‘하이킥’ 시리즈, ‘순풍 산부인과’ 등 ‘레전드’로 꼽히는 시트콤들의 인기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어쩐지 새 시트콤의 탄생을 향한 방송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그 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시트콤의 속사정은 대체 무엇일까.

몇 년 전부터 레전드 장면을 모아 만든 ‘짤’(인터넷 상에서 사진이나 그림 등을 이르는 속어)과 영상 등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옛 시트콤들은 최근 문화계 전반에 불어 닥친 레트로 열풍과 맞물리며 본격적인 인기의 부활을 알렸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신구와 가족들의 폭소 에피소드,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호박 고구마 에피소드, ’세친구‘의 고물차 에피소드,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방학숙제 에피소드 등은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 MBC와 SBS 등 채널들이 직접 유튜브 채널 ’오분순삭‘, ’SBS NOW‘ 등을 통해 자사의 옛 시트콤 방송 하이라이트 영상을 제공하면서 과거 시트콤 열풍은 더욱 뜨거워졌다.

이제 네티즌들은 짧은 영상 시청을 넘어 추억의 시트콤 ’다시보기‘를 통한 문화 향유에 나섰다. 이를 시청하는 연령도, 성별도 천차만별이다. 주 시청층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3040세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지붕뚫고 하이킥‘ ’순풍 산부인과‘ 등 상당수의 옛 시트콤이 유튜브를 통해 초등학생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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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트콤들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어쩐지 방송가는 새로운 시트콤 제작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MBC '오분순삭', SBS 'SBS NOW'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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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르가 소위 ’대박‘을 터트리면 아류작들이 줄줄이 탄생하는 것이 요즘 방송가의 트렌드(?)라는데, 어째 시트콤만은 예외처럼 보인다. 어느 장르보다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지만, 어느 채널에서도 시트콤 론칭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최근 방송됐던 시트콤은 ’으라차차 와이키키2‘(2019)가 마지막으로, ’보그맘‘ ’너의 등짝에 스매싱‘ ’대장금이 보고있다‘ 역시 지난 2~3년 사이 선보여지긴 했지만 이들 모두 시트콤보다는 ’예능형 드라마‘에 가까운 포맷의 작품들로 아쉬움을 남겼다. 정통 시트콤에 대한 대중의 니즈가 날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정작 방송가가 시트콤 제작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상 가장 큰 문제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성비‘라는 것이 업계의 시선이다. 시트콤의 경우, 주 5일 방송이 일반적인 만큼 제작비와 촬영시간, 제작 기간 등에 대한 부담감이 타 드라마들 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에 비해 시청률과 광고 수입은 낮기 때문에 결국 효율성을 따져야 하는 채널의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 이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방송됐던 대부분의 시트콤형 드라마들은 시청률적인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일부는 ’참패‘에 가까운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 들며 막을 내리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처럼 시트콤의 ’낮은 가성비‘를 만든 것은 결국 시트콤이라는 장르를 바라보는 방송가의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평론가는 금전적 가성비 문제뿐만 아니라 인력난 역시 시트콤 제작 기피 현상을 낳는 이유라고 설명하며 “현재 작가 지망생 가운데 시트콤 작가를 지망하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는 시트콤이라는 장르 자체가 드라마의 한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예능으로 보여 지고 있는 국내 방송가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연말 시상식 때 예능 작가처럼 시트콤 작가가 연예대상에서 상을 받는다. 물론 최근 시트콤을 향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과거 김병욱 사단이 흥행을 이끌었을 때도 자본과 인력 부족은 늘 언급돼 왔던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시트콤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시트콤 제작 환경은 좋아지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많은 시트콤 작가들이 드라마 작가로 전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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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트콤의 열악한 환경 속 새롭게 제작된 시트콤들은 ‘예능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아쉬운 성적을 면치 못했다. MBC,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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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몇 년 새 출발을 알렸던 시트콤들은 예능과 드라마를 결합한 ’예능 드라마‘라는 생소한 장르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편성 시간대 역시 일반 드라마와 같은 시간대를 택했으며, 주 5회 방송 대신 주 2회 방송으로 축소하며 부담을 덜었다. 하지만 이 같은 변주는 시트콤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움을, 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혼돈을 낳았다. 이는 곧 낮은 시청률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처럼 시트콤 장르가 인식 개선이라는 근본적 문제에 직면한 가운데, 추억의 시트콤을 향한 대중의 열광적 반응이 시장 저변 확대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정 평론가는 “과거 시트콤들을 재미있게 만들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은 김병욱 PD와 작가들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인력들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다른 분야들로 옮겨갔고, 지금은 더 이상 시트콤 장르로 진출하고자 하는 인력이 없는 상태”라며 “과거 만들어진 시트콤들은 충분한 재미가 보장되다 보니 시청자들이 지금까지도 시청을 하지만, 이제는 시트콤을 제작해도 과거만큼의 퀄리티와 재미가 보장될까 하는 의구심까지 생겨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유 있는 시트콤 기근 속 TV CHOSUN은 오는 3월 새 시트콤 ’어쩌다 가족‘을 론칭한다. 앞서 김병욱 사단의 ’너의 등짝에 스매싱‘으로도 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들의 성공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설 자리를 잃어버린 시트콤이 ’추억의 시트콤‘을 넘는 전성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획기적인 시스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프렌즈‘나 ’빅뱅이론‘ 등 시트콤도 우수하게 평가 받는 외국처럼 국내에서도 시트콤 장르에 대한 합당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본격적인 ’시트콤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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