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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보천보전투로 달라진 김일성의 위상,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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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역사저널 그날’

1945년 10월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소련군 환영 민중대회’가 열렸다. 조선 해방을 기념하고, 일본군에 승리한 소련군을 환영하는 대규모 집회였다.

해방을 자축하는 의미도 컸지만, 7만명의 군중이 모여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 행사에 김일성이 참석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김일성의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보천보전투’였다. 독립 무장투쟁의 암흑기였던 1930년대 김일성 부대는 ‘일본 군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그들을 습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당시 이들이 침투했던 곳은 함경남도의 ‘보천보’라는 마을이었다. 보천보전투는 독립 희망이 사라지던 시기에 ‘조선은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희망을 쏘아 올렸다.

우리에게 북한 김일성(주석)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인물로 인식돼 있다.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소련군이 김일성의 위상을 재평가하게 된 ‘그날’로 거슬러 올라간 뒤 김일성이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가는 과정을 되짚어 본다. 방송은 25일 오후 10시.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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